유교사상은 언제부터 전해 내려오게되었나요?
현재에도 유고사상이 남아서 나이가 있는분들 사이에서 남자는 위 여자는 아래라는 인식이 많이 남아있던데 이러한 유교사상이 전해지게된 계기와 언제 전해내려왔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교 자체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생겼고, 한반도에는 삼국시대부터는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교가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때는 몽골 간섭기 이후라고 합니다.
또한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교를 이념으로 삼았으며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일반 백성들에까지 유교가 깊숙히 침투하게 되었다고합니다.
따라서 한국인은 유교적 사고방식은 지금으로부터 400년 쯤 전으로 보고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자의 사상으로 집대성된 유교사상이 부분적으로 전래한 시기는 서기전 3세기의 위만조선과 한사군시대로 추정되며, 공자의 경학사상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고 활용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삼국 가운데 중국과 인접한 고구려는 먼저 중국 문화와 접촉해 수용 · 발전시키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었다.
유교는 공자에게서 비롯된 중국 대표 사상으로 도가, 법가사상과 함께 중국고대에 형성 된 3대사상 중 하나입니다.
공자가 유교의 덕목을 창안한 목적은 ‘어떻게 해야 전쟁 없는 사회를 만들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시된 것이 ‘인(仁)’으로, 따뜻한 도덕적 마음을 학습시켜 전쟁의 시대가 끝나기를 소원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교의 사상적인 기초는 공자가 이상화한 주공단으로 상징되는 주나라의 종교이자 종법질서입니다.
1392년 조선왕조 개국과 더불어 유교적 체제를 통해 새로운 이상사회를 구현하려했던 조선의 지배계층인 양반은 그들의 주거를 유교적인 이념과 생활양식을 실천할수 있는 곳으로 인식했고 이러한 경향은 유교적인 가르침이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어 조선 중기 이후 더 두드러지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교 자체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생겼고, 한반도에는 삼국시대부터는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교가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때는 몽골 간섭기 이후이며,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교를 이념으로 삼았고,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일반 백성들의 사고방식에까지 유교가 깊숙히 침투하게 됩니다.
즉, "한국인은 유교적 사고방식을 지녔다"라는 말이 성립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0년 쯤 전입니다.
유교가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맡은 바 소임을 끝까지 다하는 세계입니다.
A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A는 누군가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아들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죠.
A는 결혼을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죠.
A는 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딸에 대해서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A는 식구들 중 차남입니다. 그렇다면 차남으로서 집안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겠죠.
A는 B의 친한 친구입니다. 그렇다면 B에게는 친구로서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A의 직업은 삼성전자 직원입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겠죠.
A는 C의 직장 상사입니다. 그렇다면 C에 대해 직장 상사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합니다.
A는 D의 직장 후배입니다. 그렇다면 또 D를 만나면 직장 후배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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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맡은 역할을 끝까지 다 한다는 건 이런 의미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뭔가요?'라고 한다면, 그야 우리가 늘 말하는 거 있잖아요. 사랑해줘야 하고, 때론 엄하게 교육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거 이뤄주도록 돈도 벌어야 하고 등등.
유교사상 자체는 남존여비 사상이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착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유교뿐만 아니라 유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어도 거의 모든 문화권이 남자를 높이고 여자를 낮췄어요.
예컨대, 로마를 보면, 여성은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었고, 딸들은 아버지에게 귀속된 존재였습니다. 결혼을 하면 신부는 자신의 의지로 결혼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신랑에게 안겨서 집 안으로 들어가야 했었죠. 지금 이슬람 국가가 하는 여성탄압과 다를 바 없는 짓을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시, 여성은 시민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았죠. 주신은 죄다 남자들이었고, 시민권을 가진 남자는 일도 하지 않고 모여서 토론이나 하는 게 유일한 '직업'이었습니다.
중동이나 인도 문화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아프리카도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고.
즉, 한국의 남자가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는 사상은, 그 근본이 유교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다 한다"라는 기본 논리 자체는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역할이 무엇인지 정하기 나름입니다.
결국 '남자로서의 역할'에 좋은 걸 넣고, '여자로서의 역할'에 속박되고 억압되는 걸 넣는다면 당연히 변질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한국의 남존여비 사상이 유교에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존여비 사상을 체계화시키는 데에 유교가 이용되었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