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어떻게 왜 한글을 만들게 되었나요?

얼마전 한글날이었죠.

한글은 정말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훌륭한 글자입니다.

지금에 와서 평가이지만.

그 때는 중국글이지만 한자가 있었고.

양반들 중심사회에서 큰 불편함이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글을 만드게 되었을까요.

당시 기득권의 반대는 없었나요?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완벽한 논문 초록 예시라고 불리는 혜래본 첫장을 보면 다 나와 있습니다.

    우리 나라 말과 중국 문자는 서로 맞지 않아서 불편한 일이 너무 많으니까 우리나라 말에 맞춰서 새 글자를 만든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당연히 반대도 엄청 많았습니다.

    세조의 피의 숙청 이후 엄청난 성과를 내서 왕권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반란 직전수준으로 반대가 심했죠.

    그러나 유교의 근본이 교육을 통한 발전이고

    훈민정음은 이름부터가 백성을 가르치는 소리라는 뜻이니

    세종대왕님이 밀어붙여서 보급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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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당시의 유교가 강했으며 사대부들이 중화 중심의 질서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가 엄청 심해서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연구하여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443년에 완성하고 어떤원리로 문자를 만들어졌는지 해설사인 해례본을 통해 반포한 문자입니다.

    완성되기까지 관련 기록이 거의 없어 비밀리에 진행된 것으로 추측되어 지고 있습니다.

    창제 이유는 한자가 우리가 쓰는 말과 달라 통하지 않아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글로 표현하기 위해 민본주의의 마음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한글은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완벽하게 작동하는 문자로 500년 앞을 내다본 자음과 모음의 결합 구조가 정밀한 컴퓨터 알고리즘과 일치하며,스마트폰 자판에서 오타없이 가장빠른 속도로 타이핑할 수 있는 구조로 세계 어떤 언어보다 정보하 시대의 엄청난 경쟁력을 갖춘 문자입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훈민정음은 한자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음소문자입니다. 뿐만아니라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어진 세계 유일의 문자체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비밀번호 같은 한자 독점하던 양반들 밥그릇 깨 부수려고

    세종대왕님이 판을 까신 거죠

    기득권 꼰대들은 "우리 백성들이 똑똑해지면 통제하기 힘들다"라며

    최만리를 필두로 집단 단식투쟁 급으로 결사반대했죠

    하지만 세종 형님은 "너희만 문자 쓰고 꿀 쳐 빠냐?" 라며 방구석에서

    눈이 멀 때까지 글자를 깍으신 겁니다

    훈민정음은 K-조상의 반골 정신과 천재성이 만든 눈물겨운 발명품이니

    오늘 카톡 보낼 때마다 양반들 의문의 1패라 생각하며 즐깁시다

  • 당시 학문을 공부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하는데

    예를 들어서 천자문을 익히려면

    누군가가 불러주고 그걸 암기해서 한자를 익혀야 하죠

    글공부 선생님도 있고 하루종일 암기할 시간도 있는 양반들만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天만 책에 쓰여 있는데 그것이 하늘천 이라고 계속 알려줘야 읽고 익힐 수 있죠) 

    그런데 우리말 글자가 있으면 

    天 옆에 하늘 천 이라고 써 두고 우리말을 읽을 수 있으면 언제라도 책을 펼쳤을 때 天 이 한자가 하늘천이구나 알고 익힐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사 우리말 글자를 알면(누구나 몇 시간만 익히면 읽고 쓸 수 있는.ᐟ ) 천자문을 떼고 여러 학문을 독학할 수 있어서 당시에 더욱 획기적인 일이었어요 

    문자(한문)와 입신양명 학문을 독점하던 걸 누구나 공부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래서 기득권층은 엄청 반발한 거고요 

    기득권 반대를 깨부수고 한글 창제 , 반포하셔서

    지금 이 댓글을 한글로 쓸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이라 생각해요 ㅎㅎㅎ(물론 일제시대 사라질 뻔했는데 우리말 글 지켜준 학자들께도 감사)

  • 세종대왕은 한자를 몰라 법을 어기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뜻을 펼치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을 위해 쉽고 과학적인 글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습니다. 다만 최만리를 비롯한 당시 사대부 계층은 명나라와의 외교적 마찰 우려, 한자 중심의 지식 독점권 붕괴, 오랑캐의 글자와 같다는 이유 등을 들며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러한 반대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강한 의지로 창제를 완수했고 반대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원리와 해설을 상세히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