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동진 수의사입니다.
참 무겁고도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생물학과 동물 행동학 관점에서는 매우 흥미롭고 지금도 활발히 연구되는 주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인간 기준의 '의도적 자살'을 하는 동물은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1. 동물이 자살을 한다는 과학적 사례가 있나요?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종종 "전갈이 불길에 갇히면 스스로 독침을 찔러 자살한다"거나 "레밍(나그네쥐)이 집단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를 보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해입니다.
• 전갈: 열로 인한 근육 경련 때문에 독침이 몸에 닿는 것일 뿐이며, 자신의 독에 면역이 있어 자살할 수도 없습니다.
• 레밍: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다른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선두를 따라가다가 절벽이나 바다에 휩쓸리는 안타까운 사고일 뿐입니다.
2. 동물이 '죽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나요?
일부 지능이 높은 동물들은 동료의 '죽음 상태'를 인지하고 애도하는 듯한 행동을 보입니다.
• 코끼리: 죽은 동료의 뼈를 코로 만지며 오랜 시간 머물거나, 사체 위를 나뭇잎으로 덮어주는 행동이 관찰됩니다.
• 영장류(침팬지 등) & 돌고래: 새끼가 죽으면 며칠 동안 사체를 품고 다니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동료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상실)'는 것을 인지하고 슬퍼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생명을 끊음으로써 영원히 사라진다"는 고도의 추상적인 죽음 개념을 이해하고 계획하는지는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3. 반려동물이 주인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인을 잃은 강아지나 고양이가 밥을 먹지 않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인간의 시선에서는 ' 주인을 따라가기 위한 자살'로 해석하기 쉽지만, 동물 행동학적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기능 저하(우울증 및 불안 증세)로 봅니다.
동물에게 주인의 부재는 삶의 터전과 안전 기지가 통째로 사라진 수준의 거대한 충격입니다. 이로 인해 극심한 분리불안과 거식증이 오고,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밥을 먹지 않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의도적 선택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4. 고래의 집단 좌초(스트랜딩) 현상은 자살인가요?
고래들이 해변으로 올라와 집단으로 죽는 현상 역시 자살이 아닙니다. 주로 다음과 같은 환경적·생리적 원인 때문입니다.
• 음파 탐지기(소나) 오류: 군함의 레이더나 해양 소음으로 인해 고래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초음파 기관이 망가져 방향을 잃는 경우입니다.
• 우두머리의 실수: 무리 생활을 하는 고래의 특성상, 길을 잘못 든 우두머리를 타 개체들이 맹목적으로 따라오다가 함께 해변에 갇히게 됩니다.
• 질병 및 부상: 기생충 감염이나 감염병으로 평형감각을 잃고 조류에 휩쓸려 해변으로 밀려오기도 합니다.
5. 인간의 자살 vs 동물의 자기 파괴적 행동의 차이
과학계는 인간의 자살과 동물의 행동을 구분하는 핵심 기준으로 '의도성(Intentionality)'과 '미래에 대한 인지'를 꼽습니다.
동물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살고 싶지 않다"는 인지적 결정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 질병, 혹은 종족을 보존하려는 본능적 프로그램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현재 과학계의 정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