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협회 회장을 지낸 한말의 독립운동가입니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간도로 망명하여 지린성 류허현에서 이시영 양기탁 등과 함께 신흥강습소를 조직하여 교포 자녀들의 교육과 군사훈련에 힘썼으며 1912년 계몽단체인 부민단 등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19년 한족회를 조직하여 동료들의 자치활동에 힘썼으며 서로군정서 조직에 독판으로 활약하는 등 독립운동에 힘썼습니다. 내 아내와 자식들을 왜놈 종이 되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말은 상당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여느 독립운동가들처럼 자식과 손자들의 삶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손녀가 해방 후 고아원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러져 안타까움을 자아나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