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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코끼리20
친절한코끼리2023.06.20

고구려 시대에 불교는 어떻게 들어왔나요?

안녕하세요

소수림왕 때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왔는지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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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시대에 불교에 대한 이해는 격의 불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불교 공인 이전에 동진의 고승 지둔 도림은 고구려 도인에게 축잠 법심의 덕을 칭찬한 편지를 보냈다. 지둔과 축잠 두 사람은 당시 중국 불교계에 크게 유행하고 있던 격의 불교의 대표적 학장이었습니다. 도림의 서신을 받은 고구려 도인도 상당한 수준을 갖춘 승려였을 것이므로 고구려에서 격의 불교를 이해하는 수준이 높았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격의 불교에서 시작된 고구려의 불교학은 중국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습나다. 의연은 576년(평원왕 18) 승상 왕고덕의 청에 따라 북제의 고승 법상(495∼580)에게 가서 불법의 시말 연유와 『십지론』·『지도론』·『지지론』·『금강반 야론』 등에 관하여 자세한 것을 묻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법상은 혜광 문하의 뛰어난 제자로서 십지·지지·능가·열반 등의 경론을 강하였고, 북제 문선제의 존숭을 받아 소현 대통이 되어 200만이 넘는 승니를 이끌었다는 고승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에는 372년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 순도를 보내 불상과 경문을 전했고, 374년 승 아도가 들어왔으며 이듬해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지어 순도와 아도를 머물게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국양왕이 불교를 신봉하라는 영을 내린 이듬해인 392년(광개토왕 2)에는 평양에 9개의 절을 창건하였고, 395년에는 진나라 승려 담시(曇始)가 교화를 위해 고구려로 왔다.


    담시는 불교의 교리연구 및 설법의 이해에 필요한 경률(經律) 수십 부를 가지고 왔고, 수계(授戒)를 베풀어 불제자가 되는 길을 트이게 함으로써 불교역사상 매우 중요한 계기를 맞게 하였다.


    498년(문자왕 7)에는 대동강변에 금강사(金剛寺)를 창건하여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으며, 576년(평원왕 18)에는 의연(義淵)을 중국 북제로 보내어 정국사(定國寺)의 법상(法上)에게 불기(佛紀) 및 중국의 불교전래 등 불교의 역사전개와 교학(敎學)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배우게 하였다.


    그는 대승론서(大乘論書)의 저자 및 저술 연기(緣起), 그 저술이 갖는 영험 등에 관한 것을 자세히 배워가지고 돌아왔는데, 그가 관심을 가지고 새로 가져온 경론(經論)들은 후일에 신라의 학승들이 철학의 전거로 삼아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구려의 불교도 27대 영류왕 때에 들어온 도교의 득세로 말미암아 점차 빛을 잃고 말았다. 도교는 624년(영류왕 7)에 들어왔으며, 643년(보장왕 2)에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당나라로부터 숙달(叔達) 등 8명의 도사와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받아들인 뒤부터는 불교를 박대하였다.


    사찰을 몰수하여 도관(道館)으로 삼았고 그때까지 불교인을 대우하던 자리에 도교인을 앉히는 등 불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하였다.


    이 갑작스러운 변동에 불교인들 중에는 견디다 못해 외국으로 망명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특히 보덕(普德)은 이를 고구려 멸망의 징조로 여기고 여러 차례 조정에 간하였으나 듣지 않으므로 당시 백제 땅인 완산주(完山州: 全州)의 고대산(孤大山, 高達山)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그 뒤 고구려는 곧 멸망하게 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372) 여름 6월에 진(秦)왕이 사신 부견(符堅)과 함께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면서 불상과 불경을 전하였고, 4년(374)에 승려 아도(阿道)가 진으로부터 왔다고 한다.

    따라서 소수림왕 5년(375) 봄 2월에 초문사(肖門寺)를 지어 순도를 있게 하고,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어 아도를 머무르게 함으로써 해동(海東)에 불법이 시작되었고, 그 후 사찰건축은 계속 건립되어 불교가 전래된 100여 년 이후인 광개토대왕 2년(498)에는 평양에 9개의 사찰이 창건될 만큼 불교가 융성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 [高句麗] (한국건축사, 2006. 9. 15., 주남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