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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사람이 한번 태어나고 죽는다고 하는데요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한번 태어나고 죽는다고 하는데요 윤회설이 아니잖아요 그럼 신이 사람들이 각자 다른 환경과 다른 능력이 있는 차별을 한다는건데요 누구는 좋은집안 좋은환경과 능력이 누구는 가난하고 능력도없고 안좋은환경을 가지고 태어나는 차별대우를 인정하는건가요? 불공평한것을
9개의 답변이 있어요!
기독교 논점에선
아무래도 이사람도저사람도 죄인 즉 죄를 갖고 태어난다가
기반이어서 신의관점에선 회계하는자가 필요한거지
저사람이나 이사람이나 주어진환경에서 얼마나 착하고
남을돕고선행하며살아가는지를 보는것같아요
돈많은집에서태어나도 남안돕고살면 지옥은몰라도 천국은
못가는거니
아마 천국에서의 삶이 (천국이있다가정하에)
ㅇ질문자님이말한 페널티들을 상회하는조건인거죠
기독교는 윤회를 부정하지만, 태어날 때의 차이는 ‘차별’이 아니라 각자 다른 삶의 조건으로 봅니다. 불공평은 인간의 죄와 사회 구조에서 생기며, 하나님은 조건이 아니라 삶의 선택과 태도를 본다고 설명해요.
기독교는 환경의 차이를 신의 차별로 보지 않고, 각자에게 맡겨진 고유한 역할(분복)이 다른 것으로 이해합니다. 많이 가진 자는 베풀 책임이 있고, 적게 가진 자는 그 안에서 신뢰를 지키는 것이 가치 있다고 보는 것이죠.
기독교에서 사람이 한 번 태어나고 죽으며 윤회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질문자님의 이해는 정확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각기 다른 환경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불평등함에 대해 님께서 느끼시는 고민과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세상의 불평등을 하나님의 '차별'로 보지 않고,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모든 사람이 다른 삶의 조건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인간으로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계획과 섭리 안에 있다는 시각입니다.
모든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 선한 뜻을 이루신다고 믿어요.
(전 공감 하지 못해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세상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죄(원죄)로 인해 세상에 고통과 불공평함이 들어왔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불평등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차별이 아니라,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의 결과로 보기도 합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일까 해요)
성장과 영적인 목적이 때로는 어려운 환경이나 부족한 조건들이 개인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삶의 더 깊은 목적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쳐요.
(헛 소리 아닐까요?)
궁극적인 공평함과 사랑 이 세상에서의 모든 불공평함은 영원한 삶, 즉 하나님 나라에서 완전한 정의와 사랑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현세의 삶이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에, 단순히 이 세상의 조건만으로 하나님의 공평함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관점이에요.
님께서 말씀하신 불공평함은 우리 모두가 때때로 느끼는 감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런 차이를 하나님이 사람들을 차별하는 행위가 아닌, 더 넓은 구원의 계획과 인간의 역할, 그리고 궁극적인 회복의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때나마 기독교인 이였는데 살아가면서 대부분 헛소리 처럼 들리더라고요
모든 교리는 받아 들이기 나름이라 생각해요
저처럼 반대적 상실감으로 기독교인을 포기한 분들도 계실것이고 지지하시는 분들도 계실거요
종교는 아무래도 개인적 믿음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독교는 인간이 죽고 나면 천국과 지옥을 간다고 가르 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살면 이 세상에 누리지 못한 행복과 즐거움을 천국에서 누린다는 개념 입니다. 물론 죄를 짓고 살면 지옥에 간다는 개념 입니다. 기독교의 사상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 난다는 불교의 윤회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본인의 믿음에 따라 어느 것이 중요한지는 개인적인 판단이 필요 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토기장이는 그릇을 빚을 때 좋고 비싼 그릇을 만들 수도 있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토기장이 마음입니다. 그것 가지고 그릇들이 뭐라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바라볼 때 누구는 좋은집안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고 등등~~
그렇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누구는 10달란트 누구에게는 5달란트 또 누구에게는 1달란트~~~
중요한 것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달라트를 잘 사용하고, 관리해서 그 과정에서 귀하고 복된 열매를 맺는 삶으로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남하고 비교하는 순간 그 인생은 감사가 없어지고, 감사가 없어지면 불평 불만만 생기고 그러다 보면 그 인생 훗날 아주 비참해 집니다. 남하고 비교하면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 외에는 모두 다 불행해야 합니다.
남하고 비교하는 삶은 아주 잘못된 삶입니다.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기독교는 윤회를 부정하면서도, 하나님이 사람을 함부로 차별해서 만든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 번뿐인데 출발선이 이렇게 다른 건 부당하다”는 문제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질문이 기독교 안에서 “하나님의 정의·선하심”을 논의하는 핵심 출발점이 됩니다.
기독교에서는
세상에 구조적인 악과 불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태어날 때 이미 불평등한 조건 속으로 들어온다고 봅니다.
이 불평등 자체를 “하나님이 차별하려고 일부러 만든 것”이라기보다,
인간의 죄와 역사 속 불의의 축적 결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든 사람을 똑같이 스타트라인에 세우는 분”이 아니라, 각자 다른 조건 속에서도 책임과 응답을 보시는 분으로 이해합니다
즉, 가진 것·능력의 절대량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선택했는지를 보신다는 관점입니다. 같은 가난이라도, 같은 부유함이라도, 각 사람의 마음과 선택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힘 있고 부유한 사람은 “더 많이 받은 만큼 더 크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의 윤리, 약자를 돕고 구조적 불의를 줄이려는 실천이 강조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자선뿐 아니라, 가난·차별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열매라고 설명해 왔습니다
기독교는 그런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냥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갖고 태어나고
모든 평등한 존재라고만 해요,
현실에서는 평등하지 않는데요,그런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고 근본은 평등하다고만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