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김구는 임시정부의 침체를 극복하고 중국인의 반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창설하였습니다. 그 결과 1호 단원인 이봉창 의사의 도쿄 의거는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만주 사변 이후 쏠린 비난 여론을 중국 민보의 언론 보도를 구실로 상하이 사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상하이 사변 전승 기념과 천장절 기념 행사를 맞아 일으킨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는 침체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국내외에 다시 알린 의열투쟁이었다. 특히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 요인을 살상하자 중국 국민당은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고, 자금 지원과 한인특별반 설치 등으로 독립운동 인재를 양성하게 되었다. 이로써 임시정부는 중국과 연대한 항일투쟁의 새로운 기반을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