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는 1735년에 태어나 이듬해 어린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여러 기록과 전언으로 볼 때 사도세자는 어릴 때 매우 총명하고 재주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커가면서 기질이 강하고, 감정 기복이 컸다고 전합니다.
사도세자는 실제 왕위에 오르지 않아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영조와의 갈등, 정조의 아버지라는 역사적 의미가 더 크게 작용합니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직접 계기는 세자의 일탈과 폭력성에 대한 고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년 궁인 살해, 기행, 공중의 질서 파괴, 심지어 반역 의심까지 있었습니다. 영조는 이를 심각한 국가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만 부자 갈등 만이 아니라 당시 붕당간의 대립과 왕실 내부의 권력 문제까지 작용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