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산송문제는 왜 일어났나요?
영화 파묘를 보고 문뜩 생각이 난 것인데,
조선 시대의 소송 및 송사 사건의 상당수가 산송문제였다고 하는데,
땅이 정해져있고, 묘소도 다 정해졌을텐데,
왜 산송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산송 문제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발생하였습니다. 주로 산송문제가 일어난 이유는 유교 사상의 확산으로 부모님에 대한 마지막 효도로 묏자리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기인됩니다. 또한 풍수의 영향입니다. 즉 좋은 묏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입니다. 또한 신분제의 동요로 몰락한 양반 가문의 선산을 빼앗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산송은 분묘와 분묘 주변의 산지를 대상으로 하는 소송입니다. 노비ㆍ전답 소송과 함께 3대 사송 중 하나로 묘지 소송이라고도 합니다. 16세기 이후 부계 분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묘지 풍수의 유행으로 길지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욕구가 높아졌기 때문에 크나큰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산송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 이유는 유교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부모님께 마지막 효도를 하기 위해 묏자리를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음택 풍수가 유교 사상과 결합하여 묏자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신분제의 동요로 인해 중인, 상인 층이 몰락한 양반 가문의 선산을 뺏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땅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땅1mm도 기계로 잴수 있는 요즘도
토지 소유권 분쟁이 종종 일어나죠.
그런 측량 기술도 없는 옛날에는
나라의 국경선 조차 지형기준으로 대략적으로 정해져서
영토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곤 했습니다
개인의 토지에 관해선 당연히 더 심했죠
그리고 조선은 유교 국가라서 묘지를 포함한 장례절차 전체를 매우 중요히하며
풍수지리같은 속설을 누구나 믿는 시대 였기 때문에
당시의 조상의 묫자리 라는 것은
현대로 따지자면 학군, 역세권, 일조권 등의 위치관련 권리를 모조리 합한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일어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