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청나라가 아편전쟁 때 갑자기 무능해졌다기보단,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간 게 컸어요. 오랫동안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에 젖어 있어서 서양 문물이나 군사기술을 얕봤거든요. 그 사이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증기선이랑 신식 화포로 무장했으니, 재래식 무기 든 청군은 상대가 안 됐던 거죠.
내부적으로도 이미 곪아 있었어요.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관료들은 부패했고 지방 통제력도 약해진 상태였거든요. 여기에 아편까지 퍼지면서 대금으로 은이 대량 빠져나가 재정이 휘청였고요. 겉은 거대한 제국인데 속은 이미 골병이 든 상태였던 거예요. 아편전쟁은 그 민낯을 밖으로 드러낸 계기였던 거고요.
질문하신 태평천국 진압 때 의병을 동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정규군인 팔기군이랑 녹영이 이미 오합지졸이 돼서 제대로 못 싸웠거든요. 그래서 증국번의 상군, 이홍장의 회군처럼 지방 유지들이 사비로 조직한 의용군(향용)에 진압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중앙군이 유명무실해지니 지방 무장세력 힘을 빌린 건데, 이게 나중에 지방 군벌이 커지는 씨앗이 되기도 했고요.
결국 청의 무능은 한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 거부, 내부 부패, 재정 악화가 오래 겹쳐 쌓인 구조적 쇠퇴였다고 보면 돼요. 아편전쟁이 그걸 세계 앞에 확 드러내버린 사건이었던 거죠. 이후 양무운동으로 뒤늦게 근대화를 시도하긴 했지만 근본 체제를 못 바꿔서 한계가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