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현 여사는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해 무장 독립 운동과 여성 계몽 등을 주동했습니다. 그녀는 1919년 서울 만세 우동에 참가해 만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 등 무장단체에서 활동하며 군자금 모집, 독립군 후방 지원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동만주 일대에 교회, 예배당 12곳을 세우고, 여자 교육회 10엳곳을 조직해 여성 교육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1927년 안창호, 김동삼 등 독립운동가 300여명이 중국 관헌에 체포된 길림 사건 때 중국 측과 교섭해 대량 석방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또한 1932년 국제 연맹 조사단에게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혈서 전달을 시도했습니다. 그녀는 1933년 만주국 주재 일본 전권 대사 처단 의거를 계획하다 체포되어 하얼빈 감옥에서 고문과 단식 투쟁 끝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순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