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부터 말씀드리면, 변기 안에 떠 있는 변 덩어리와 주변에 퍼진 부유물 정도가 보이는데, 이 사진만으로 하얀 막이나 덩어리의 정체를 확정하긴 어렵습니다. 원격으로 색과 형태만 보는 데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증상과 묶어서 보면 짚이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가장 가능성 높은 건 점액입니다. 대장 점막은 원래 윤활과 보호를 위해 점액을 분비하는데, 직장이나 항문 쪽에 자극이나 염증이 있으면 그 양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치핵이 부어 있다고 하셨으니, 부푼 치핵 표면과 항문 점막이 변이 지나갈 때 자극받으면서 점액이 더 묻어나오는 그림이 잘 들어맞습니다. 점액은 보통 반투명하거나 희끄무레하고, 콧물처럼 끈적하거나 막을 이루는 형태로 변 표면에 붙어 나옵니다. 닦을 때 피가 비치는 것도 치핵에서 흔한 일이라, 지금 증상의 상당 부분은 치질 범주 안에서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임신 중기부터 시작됐다는 점은 별개로 봐야 합니다. 커진 자궁이 골반 정맥을 누르면서 치핵이 잘 생기고 악화되는 시기가 딱 그때거든요. 변비도 임신 중에 흔해지고, 단단한 변이 점막을 긁으면 점액과 출혈이 같이 늘어납니다. 그러니 임신이라는 배경 자체가 지금 상황을 만든 주된 요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흰 덩어리가 점액이라면 대부분 이 선에서 해결됩니다.
다만 점액이라고 단정만 하긴 조심스럽습니다. 흰색이 곰팡이처럼 뭉친 덩어리나 알갱이 형태라면 칸디다 같은 진균이나 드물게 기생충, 혹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찌꺼기일 수도 있어서 직접 봐야 구분이 됩니다. 점액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양이 점점 늘거나, 설사·복통·체중감소가 같이 온다면 단순 치질을 넘어선 염증성 장질환 쪽도 배제해야 합니다. 지금 그런 동반증상이 없다면 급한 상황은 아닙니다.
병원은 이미 보신 항문외과(대장항문외과)가 1차로 맞습니다. 치핵 진단을 받으셨으니 거기서 항문경 정도의 직접 진찰로 점액과 출혈의 출처를 다시 확인받으시고, 흰 덩어리가 신경 쓰이면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거나 사진을 보여주세요. 임신 중이라 대장내시경은 미루는 게 맞지만, 항문경이나 직장수지검사 같은 건 임신 중에도 안전하게 받으실 수 있습니다. 변비 관리(수분, 식이섬유, 필요시 산부인과와 상의한 안전한 완하제)와 좌욕을 병행하면 출혈과 점액 둘 다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응급으로 봐야 할 신호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선홍색 피가 변기를 물들일 만큼 다량으로 나오거나, 검붉은 변 또는 자장면처럼 까만 변이 보이거나, 심한 복통과 발열이 동반되면 그땐 미루지 마시고 바로 진료받으셔야 합니다. 산모와 태아 모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 출혈량은 특히 가볍게 넘기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