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수는 자유당 정권 말기에 활동한 정치 깡패입니다. 그는 이정재가 은퇴하며 물러난 동대문상인연합회 회장직을 이어받았고, 대한반공청년단 등 우익 청년단체와도 연계해 자유당 정권의 비호 아래 세력을 키웠습니다. 동대문파로 불리며 정치, 연예계, 극장업계를 장악했습니다.
특히 1959년 임화수가 단장으로 있던 반공예술인단 행사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희극배우 김희갑을 폭행한 사건이 유명합니다. 당시 임화수는 구속되어 벌금을 받았으나 사실상 권력의 비호 아래 가벼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가 악명이 높았다는 거은 자유당 정구너 하에서 연예인을 선거 운동과 정권 선전에 동원하고 야당 인사, 4.19혁명을 촉발시킨 고려대생 린치사건 등에 정치 테러를 지시하는 등 정치 깡패로서 상징적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