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닦이는 건 세제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오래된 기름때는 공기 중에서 산화되면서 딱딱한 막으로 굳어 버려요. 주방세제는 갓 묻은 기름을 감싸 씻어내는 용도라 이미 굳은 막에는 힘을 못 씁니다. 문지르면 뭉치기만 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이걸 녹이려면 알칼리가 필요합니다. 알칼리는 굳은 기름을 비누로 바꿔 버려요. 그래서 알칼리가 닿으면 기름때가 스스로 미끄러운 비누처럼 변하면서 물에 씻겨 나갑니다. 말씀하신 문지르지 않고 녹인다는 게 바로 이 반응이에요.
집에서 쓰는 알칼리는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인데, 세기는 과탄산소다가 훨씬 강합니다. 필터는 큰 대야에 아주 뜨거운 물을 받고 과탄산소다를 풀어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담가 두세요. 물이 뜨거울수록 반응이 빨라져서, 미지근한 물로는 효과가 잘 안 납니다.
다만 여기서 꼭 확인하실 게 있습니다. 후드 필터는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두 종류인데, 알루미늄은 강한 알칼리에 닿으면 표면이 검게 변하고 삭아요. 자석이 안 붙고 유난히 가벼운 은색이면 알루미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는 과탄산소다 대신 뜨거운 물에 주방세제를 진하게 풀어 짧게만 담그시고, 스테인리스라면 마음 놓고 담그셔도 됩니다.
타일은 담글 수가 없으니 방식이 다릅니다. 세제를 뿌린 뒤 그 위에 키친타월을 덮고 한 번 더 적셔서 십오 분에서 삼십 분 두세요. 흘러내리지 않고 계속 젖어 있어야 반응이 진행되는데 키친타월이 그 역할을 합니다. 그다음엔 문지르지 말고 닦아 내기만 하면 돼요.
흔히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섞으라는 이야기가 도는데 이건 오히려 손해입니다. 둘을 섞으면 서로 중화돼서 알칼리도 산도 아닌 상태, 사실상 소금물에 가까워져요. 거품이 요란하게 나서 뭔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정력은 떨어집니다. 식초는 물때와 냄새용, 알칼리는 기름용으로 따로 쓰셔야 합니다.
안전도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락스와 산성 세제를 같이 쓰면 유독가스가 나옵니다. 어떤 세제든 섞지 마시고, 알칼리를 다룰 때는 고무장갑을 끼고 창문을 여세요. 맨손에 닿으면 미끄러운 느낌이 나는데, 그게 피부 기름이 비누로 바뀌고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는 굳기 전에 잡는 게 제일 쉽습니다. 요리 직후 후드가 아직 따뜻할 때 한 번 훑으면 몇 초면 끝나고, 필터는 한두 달에 한 번 담가 두시면 이번 같은 상태까지는 안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