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을 잘 짚으셨습니다. 마취제와 진통제는 통증을 차단하는 지점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마취제는 신경 자체의 전기 신호 전달을 물리적으로 차단합니다. 국소마취제(리도카인 등)는 신경세포막의 나트륨 통로를 막아서 신호 자체가 뇌로 올라가지 못하게 합니다. 감각이 통째로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진통제는 작용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통증 신호는 뇌까지 도달하지만, 뇌가 그것을 고통으로 인식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변형시킵니다. 대표적인 예로 아편계 진통제(모르핀, 옥시코돈 등)는 뇌와 척수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결합해서 통증 신호의 감정적 처리를 억제합니다. 신호는 도달하지만 "이것이 고통스럽다"는 반응이 둔해지는 것입니다.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은 중추신경계에서 통증 역치를 높이고, 이부프로펜 같은 소염진통제는 말초 조직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통증 유발 물질의 생성 자체를 억제합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마취제는 전화선을 끊는 것이고, 진통제는 전화가 연결은 되지만 수신 음량을 줄이거나 받는 사람이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만드는 것에 가깝습니다. 신호와 인식 사이의 간극을 이용하는 것이 진통제의 핵심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