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갑신정변과 청과 일본 군대의 무력 충돌

임오군란 때 들어왔던 청군이 주둔 허용한다는 조약은 맺지 않았지만 임오군란 후에도 그 병력이 아직 일부 남아있었고 또 제물포조약에 따라 조선에 들어왔던 일본군이 들어와있었는데 갑신정변이 터지자 그 두 군부대가 전투를 한게된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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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시정변 발발 당시 서울에는 청군이 일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청군은 임오군란 진압을 위해 위안스카이 등이 이끄는 3천명의 병력이 주둔했으며, 청불 전쟁 발발로 일부가 철수했어도 상당수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1882년 8월 제물포 조약으로 일본 공사관 수비를 위해 1개 대대(150여명)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고종의 밀지를 받은 형태로 일본 공사관 호위병 150명이 궁궐 호위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위안스카이가 이끄는 약 1500여명은 국왕의 요청도 없이 창덕궁으로 공격해 왔습니다. 일본군은 인원이 적고 본국으로부터 정변 개입 자제 지시를 받은 데다 결정적 순간에 철병하면서 개화당은 급속히 무너졌습니다. 따라서 갑신정변은 청군과 일본군이 서울에서 직접 교전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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