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14살꿈많던아이
브람스는 왜 첫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요?
브람스가 베토벤의 그림자에 눌려 첫 교향곡 작곡에 20년 가까이 걸렸다고 배우는데, 왜 이렇게 부담감을 크게 느끼며 신중하게 접근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흔히 **“베토벤의 그림자를 의식한 나머지 20년 가까이 걸린 작품”**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브람스가 자신감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당시 음악계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이 차지하던 위상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 브람스에게 베토벤은 단순한 '선배 작곡가'가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중반의 독일 음악계에서 베토벤은 거의 교향곡의 기준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이후에는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베토벤 이후에 교향곡을 또 어떻게 쓸 것인가?”
베토벤이 교향곡이라는 장르를 너무 높은 수준으로 완성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람스가 새로운 교향곡을 발표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 작품 하나 발표합니다.”
가 아니라 사실상
“베토벤 이후의 독일 교향곡 전통을 내가 이어가겠습니다.”
라는 의미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2. 실제로 브람스 자신도 베토벤을 엄청나게 의식했습니다
브람스는 20대부터 교향곡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곡을 시작했다가 버리고, 다시 고치고, 다른 작품으로 돌리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특히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브람스가 친구에게 자신의 교향곡을 보여주었을 때,
“베토벤의 9번 교향곡과 비교하면 어떻게 보일까?”
라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브람스에게는 **'내가 베토벤보다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단순한 열등감보다,
“베토벤이 만들어 놓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교향곡을 내가 발표해도 되는가?”
라는 작곡가로서의 엄격함이 더 컸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3. 결정적인 사건은 슈만의 평가였습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브람스가 젊었을 때 로베르트 슈만은 브람스를 보고 굉장히 강한 평가를 내립니다.
1853년 슈만은 브람스를 공개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작곡가”**로 극찬했습니다.
그런데 이 찬사가 오히려 브람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왜냐하면 슈만이 사실상 브람스를
베토벤 이후의 독일 음악을 이어갈 인물
처럼 세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20대의 젊은 브람스에게 이미 엄청난 기대치가 씌워진 것입니다.
4. 그래서 브람스는 '교향곡' 대신 다른 장르에서 먼저 자신을 증명합니다
이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브람스는 교향곡을 오랫동안 미루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피아노 협주곡
독일 레퀴엠
실내악
피아노 작품
가곡
관현악 작품
등을 통해 자신의 작곡 세계를 계속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독일 레퀴엠》**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향곡은 아니지만 거대한 관현악과 합창을 다루면서 브람스가 대규모 음악을 구축할 수 있는 작곡가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1876년, 43세의 브람스가 교향곡 제1번을 발표합니다.
젊은 천재가 바로 교향곡을 쓰는 것이 아니라, 거의 20년 동안 자신을 검증한 뒤 내놓은 작품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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