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6

조선시대 칠서의 옥이 무슨 사건인가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 있었던 칠서의 옥이 무슨 사건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칠서의 옥이 일어났던 배경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건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13년(광해군 5) 대북파(大北派)가 영창대군(永昌大君) 및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옥사입니다.

    칠서지옥(七庶之獄)이라고도 한다.

    역사적 배경

    선조 말엽부터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와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파 간의 암투가 심각하였다. 1608년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파가 집권하였다.

    대북파는 먼저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는 구실로 소북파의 영수인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의 사사(賜死)를 주도하고 소북파를 축출시켰다. 이후 영창대군 및 그 주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움직임을 지속하였는데, 때마침 1613년 3월 문경의 새재[鳥嶺]에서 상인을 죽이고 은 수백 냥을 약탈한 강도사건이 일어났다.

    범인 일당은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의 서자 응서(應犀), 심전(沈銓)의 서자 우영(友英), 목사를 지낸 서익(徐益)의 서자 양갑(洋甲), 평난공신(平難功臣) 박충간(朴忠侃)의 서자 치의(致毅), 북병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의 서자 경준(耕俊), 박유량(朴有良)의 서자 치인(致仁), 서얼 허홍인(許弘仁) 등이었다.

    이들은 허균(許筠)·이사호(李士浩) 및 김장생(金長生)의 서제 경손(慶孫) 등과 사귀면서 스스로를 죽림칠현(竹林七賢)·강변칠우(江邊七友)라 일컬었다. 이들은 일찍이 1608년에 서얼금고(庶孼禁錮)의 폐지를 주장하며 연명으로 소를 올렸다.

    그러나 자신들의 주장이 거부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1613년 초부터 경기도 여주 강변에서 당여(黨與)를 맺었다. 그리고는 무륜당(無倫堂)을 짓고 나무꾼·소금장수·노비추쇄인(奴婢推刷人)을 가탁(假託)해 전국에 출몰, 화적질을 하였다.

    그러던 중 새재에서 상인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는 일을 저질렀다. 결국 이들은 피살자의 노복 춘상(春祥)이 뒤를 추적해 포도청에 고발하여 일망타진되었다.

    이 때 대북파의 이이첨(李爾瞻)과 그 심복 김개(金闓)·김창후(金昌後) 등이 포도대장 한희길(韓希吉)·정항(鄭沆) 등과 모의, 영창대군 추대 음모를 꾸미고는 국문 과정에서 이들에게 거짓 자복하도록 교사하였다. 이에 박응서가 비밀소를 올려 옥사가 시작되었다.

    경과

    [네이버 지식백과] 계축옥사 [癸丑獄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지식의 신
    지식의 신23.05.16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칠서의 옥은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일어난 사건으로 조선시대의 정치적인 변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의 왕

    실과 세력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칠서의 옥은 1504년에 조선의 정조(朝鮮 定祖) 왕세자(후의 중종)와 왕녀들이 왕권을 뒤흔들려고 하는 움직임을 막기 위해 정조의 어

    머니인 순경왕후가 왕자들을 옥에 가두어 두었던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 사건은 왕자들이 왕권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일

    어났으며 왕세자와 왕녀들은 궁중에서 긴 시간 동안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칠서의 옥은 조선시대의 권력 싸움과 왕권 강화를 위한 왕실 내부의 분쟁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는 정조

    가 중종으로 즉위하여 왕권을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고 그의 지지 세력이었던 대북의 기자헌, 이이첨, 유몽인이 실세로 떠오릅니다.

    그들이 집권하자 대북은 소북의 영수이자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유영경을 제거하나 대북은 박홍구, 박승종, 류희분을 비롯한 소북에세 완전히 우위를 주지 못했고 정권의 주도권을 제대로 잡지 못해 삼정승은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심희수를 비롯한 서인과 남인계 대신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611년 성균관이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비롯한 사림 출신인 5명의 학자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언적과 이황이 명종 시절 때 소윤에게 협력하면서 조정에서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를 비루하게 본 정인홍이 회퇴변척소로 이언적과 이황이 성균관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반대합니다. 이러한 회퇴변척소를 기점으로 조정에서 여론을 모이기 시작하여 1612년 봉산옥사가 터지면서 대북은 정권의 우위를 서게 됩니다. 광해군은 서인과 남인에게 안심을 주기 위해 위성, 익사, 정운, 형난공신을 서인, 남인, 소북, 대북에게 골고루 나눠주며 서인과 남인의 불안감을 해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강변칠우의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등이 조령에서 은 상인을 죽이고 은 6700냥을 약탈한 사건이 일어나고 1608년 서양갑, 심우영, 이경준, 김경손은 서얼 허통의 연명 상소를 올린 적이 있으나 이가 거절된 후부터 그들이 보는 세상에 대한 시선은 냉소로 바뀌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지며 점차 과격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 대북파는 왕위 계승권 분쟁으로 장차 위협이 될수있는 영창대군을 제거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데 대북의 영수인 기자헌, 이이첨, 유몽인 등은 이 사건을 위조해 그들을 제거하기로 합니다. 대북파는 박응서로부터 허위 자백을 하도록 설득 , 그 내용은 박응서는 박치의 , 심우영 등과 역모를 모의했으며 은 약탈과 같은 역모를 일으킬 무신들과의 교류에 필요했기 때문에 저질렀다는 내용입니다. 은 등을 뇌물로 주어 정협을 훈련대장에 앉히고 역모에 성공해 영창대군을 옹립 후 소성대비에게 수렴청정을 맡기려 했다는 것으로 옥사가 시작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계축옥사는 1613년 봄 재물을 노리고 살인죄를 저지른 박응서를 대북파 이이첨 등이 유혹하여 면죄의 댓가로 거짓 역모를 고발하게 하여, 영창대군과 김제남을 죽이고 영창대군을 비호하던 세력을 조정에서 제거한 사건입니다. 영창대군은 1614년 9살의 나이로 강화부사 정항에게 살해당하였고,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는 사건의 여파로 서궁에 유폐되었습니다. 박응서 등 일곱명의 서자가 관련된 사건이라고 해서 ‘칠서지옥(七庶之獄)’으로 불리거나, 주모자로 지목된 서양갑의 이름을 따서 ‘서양갑의 옥사[徐獄]’, 고변자의 이름을 붙여서 ‘박응서의 옥사’라고도 불리웁니다.

    고(故) 목사 서익(徐益)의 첩의 아들인 서양갑(徐羊甲), 고 감사 심전(沈銓)의 첩의 아들 심우영(沈友英), 허홍인(許弘仁), 고 정승 박순(朴淳)의 첩의 아들 박응서, 박충간(朴忠侃)의 첩의 아들 박치의(朴致毅) 등이 생사를 같이 할 친구 관계를 맺고 때도 없이 어울려 돌아다녔습니다. 서얼금고(庶孽禁錮) 법에 묶여서 재주가 있어도 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양강가에 같이 살면서 집의 이름을 무륜당이라 하고, 시를 짓고 술마시는 것으로서 낙을 삼았다. 강변칠우(江邊七友)라고도 하고,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고도 하였습니다.

    1609년(광해군 1)부터는 여주(驪州) 강변으로 거처를 옮긴 뒤 각 집안을 합쳐 재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금장수를 하기도 하고 노비를 추심하러 돌아다니기도 하였지만 결국 도적이 된 이들은 1613년 조령 길목에서 행상인을 죽이고 은자 수백 냥을 탈취하는 사건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었습니다. 단순 강도사건은 갑자기 역모사건으로 비화됩니다.


    광해군 정권은 초반부터 역모사건을 통해 정치적인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유영경-임해군-김직재 로 이어지는 역옥을 통해 대북파는 정치적 권력을 쟁취해 나갔고, 광해군은 정통성 시비를 잠재우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창대군이 존재하는 한 이런 상황은 언제든지 역전될 수밖에 없었고, 박응서 등의 강도행각은 도화선에 불과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13년(광해군 5년)에 대북파가 영창대군 및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옥사.계축사화 또는 '칠서지옥(七庶之獄)', 그러니까 '칠서의 옥'이라고도 한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