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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캐슬
아이언캐슬23.03.31

퇴계이황과 율곡이이의 사상적 차이는 무엇인가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로는 퇴계이황과 율곡이이가 있는데요, 이 두분은 사상적으로도 다르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주전론, 주기론 이런게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면 퇴계이황과 율곡이이의 사상적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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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황은 '이'를 중시하므로써 사물(또는 사람)의 본성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던 거죠. 그리고 그 '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거스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이는 '기'를 중시하므로써 사물(또는 사람)의 본성이 '기'를 통해 변화될 수 있으며 언제라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고쳐서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 퇴계 이황(주리론) : 대체로 향촌 사회에서 중소 지주적 경제 기반을 가진 사림들이 발전시켜 갔습니다. 이들은 경험적 세계의 현실 문제보다는 도덕적 원리에 대한 인식과 그 실천을 중요시하여, 신분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 규범이 확립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황의 학통은 김성일 · 유성룡 등의 제자에게 이어져 영남학파를 형성했고 이들은 대체로 동인 붕당에 속했습니다.

    2.율곡 이이(주기론) : 경험적 현실 세계(주기)를 중요시하는 동시에 관념적 도덕 세계(주리)를 존중하는 새로운 철학 체계를 수립했습니다. 그는 주기론의 관점에서 주리론도 포괄하는 조선의 성리학을 집대성했습니다. 이이는 현실 문제를 과감하게 개혁할 것을 주장한 경세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동호문답》, 《성학집요》 등이 있습니다. 이이의 학통은 조헌 · 김장생 등으로 이어져 기호학파를 형성했고, 이들은 대체로 서인으로 이어집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퇴계 이황의 주리론은 이치가 중심이 되어 기를 주재한다는 것으로 우주 만물의 보편적 원리는 이이며 모든 사물의 현상을 기 라고 하였고 기는 이의 발현이므로 이가 더 중심적이라 주장합니다.

    인간의 존재와 본질도 행동적인 면보다 이념적인 면해서 추구해야 하며 인간의 도덕적, 인격적 완성을 중요시했습니다.

    율곡 이이의 주기론은 모든 현상은 기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으로 우주 만물의 모든 현상은 기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라고 하는 것은 기의 작용에 내재하는 것이며 표현하는 것은 기이고, 표현하게 되는 까닭은 이인데 기가 아니면 표현할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현상은 기의 작용으로 이해되고 이념적 윤리보다 실천적 윤리를 중시하며 인간 본연의 성 보다는 기질의 성을 중요시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퇴계이황과 율곡이이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학자 중 두 명입니다. 이 두 학자는 사상적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주전론과 주기론은 이 두 학자의 사상적 차이를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주전론은 세속적인 세계에서 인간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세계적인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주기론은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규정하려는 것을 강조합니다.

    퇴계이황은 주기론을 지향하는 학자로,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규정하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세속적인 지식과 기술보다는 도덕적인 가치와 철학적인 고찰을 중시하는 입장입니다.

    반면에 율곡이이는 주전론을 지향하는 학자로, 세속적인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여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입니다. 그는 실학을 중시하였고, 조선시대의 사회, 경제, 정치 등의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따라서, 퇴계이황과 율곡이이는 사상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이는 주전론과 주기론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황과 이이는 둘 다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 학자이자 정치가지만,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은 달랐다고 합니다. 이황은 훈구파와 사림파가 마지막 정쟁을 벌이는 과도기의 정치가였고, 이이는 사림파가 지난한 정치 투쟁 끝에 훈구파를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한 시기의 정치가였지요. 이이가 활동하던 시기의 사림은 집권당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이황에게 이와 기는, 사단과 칠정은 각각 상과 현실의 반영이었다고 합니다. 사회를 통해 지고한 이상이 저급한 현실에 좌절하는 것을 본 이황에게 기는 이에 의해 극복 되어야 할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신사 공봉 해야 했던 송의 비참한 정치상황에서 나온 중국 민족의 중세적 세계관이 주희가 정립한 성리학이었듯이, 부패한 훈구파에게 사림파가 억압받는 상황 속에서 조선 사림파의 세계관이 이황의 이기 이원론입니다. 이민족의 억압과 훈구파의 억압이라는 서로 유사한 정치 상황이, 공간과 시대를 뛰어넘어 주희와 이황과 같은 이기이원론으로 이끈 것이지요. 즉,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이기 이원론을 주장 한 것이고

    그러나 사림이 집권세력이 된 변화된 사회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아야 했던 이이는 달랐습니다. 일단 집권한 이상, 이상과 현실을 분리해 세상을 바라보기보다는 현실 긍정의 토대 위에 개혁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이에게 현실과 이상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일체였습니다. 이이의 이기일원론, 나아가 이이의 사단칠정론이나 인심도심설이 이황의 사상과 달랐던 이유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예림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머리가 먼저냐 몸이 먼저냐였습니다.


    이황은 주리론을 주장했는데

    절대적이고 이론적인 선, 도덕적 원리를 익히면 저절로 몸이 이에 맞추어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이는 주기론을 주장했는데

    비록 배움이 짧더라도

    실질적으로 선한 행위를 하다보면 도덕적인 인간이 되며

    이론만 주구장창 파기 보다는 하나라도 실천해야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