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숫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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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모든 중국집은 대만 화교들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칠팔십년대 한문으로 된 간판에 중국집이 동네에 있었는데 그집 아들이 골목대장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ㄱㅒ한테 잘보이면 짜장면 얻어먹을 수 있어서 애들이 많이 좋아했어요. 당시 중국집이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대만화교고 학교도 화교학교 다니고 가족들이 항상 중국어만 쓰더라구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과거 한국 내 중국집 사장들의 혈통과 출신 지역은 대부분 중국 산둥성입니다.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된 후, 대한민국 정부는 공산당을 인정하지 않고 대만의 국민당 정부만을 유일한 정통 정부로 인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에 거주하던 화교들은 고향이 대륙이더라도 자동으로 대만(중화민국) 국적을 부여받았습니다.

    과거 화교에 대한 토지 소유권 제한, 취업 차별, 금융 제약 등으로 인해 화교 대부분은 진입 장벽이 낮고 기술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음식점(중국집) 창업으로 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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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70~80년대에는 동네 중국집 상당수가 대만계 화교가 운영했습니다. 당시 한국운 중국이 아닌 대만과 수교중이어서 화교 대부분이 대만 국적이었고 , 화교학교에 다니며 집에서는 중국어를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자로 된 중화요리 간판도 흔했죠.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집이 크게 늘면서 이런 모습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 7~80년대에도 중국집을 한국인이 운영했어요,

    단지 화교가 밀집된 지역인 인천등에서 화교가 운영을 했어요,인천 화교타운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아요,거긴 화교학교도 있어요,주변에 중국집이 모두 화교가 운영을 합니다.

    다른지역은 한국인이 운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