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파·벽파의 분리에 관한 문헌상의 언급으로는 다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분파의 기미가 정조 4년(1780)부터 있다가 12년(1788)의 정민시(鄭民始)의 상소를 통해 처음으로 시·벽의 호칭이 나타났다는 설(정조실록 권25, 정조 12년 4월 을묘일조의 정민시의 상소에 대한 사관의 논평).
둘째 영조 만년에 척리 사이에 남당·북당의 갈림이 있었는데, 정조대 특히 그 19년 이후로 남당에 가까웠던 자들이 벽파, 북당에 가까웠던 자들이 시파로 분립했다는 설(순조실록 권9, 순조 6년 6월 신축일조의 사평)
셋째 기원은 남당·북당에 있으나, 정조 8년부터 시파·벽파의 호칭이 쓰이기 시작했다는 설(순조실록 권11, 순조 8년 10월 경인일조의 이심도 상소) 등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시파·벽파 분립의 표면화는 정조의 탕평정책이 더욱 성숙되어 가는 시기인, 즉 12∼19년 사이인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