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년 무신 정변이 일어난 배경은 문신 중심의 문벌 귀족 사회에 따라 무신들의 차별입니다. 고려는 군사 지휘권조차 문신이 장악했는데, 국방을 논의하는 도병마사에도 정3품인 상장군이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무신은 단순한 지휘관 역할에 그쳤으며, 국왕과 행사의 호위 역할만 해야 했습니다. 과거에서도 문과는 있었으나 무과는 출세의 길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문벌 귀족들은 음서 제도와 공음전으로 대대로 관직과 토지를 세습하여 부를 축적했지만 무신들은 전쟁에서 공로가 있어도 토지 분배에서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급 군인들도 문신 귀족이 토지를 독점하면서 군인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노역에 동원당해야 했습니다.
1120년 이자겸의 난, 1135난 묘청의 난 등 문벌 귀족 사회의 동요가 있었으나 의종은 개혁은 하지 않고 오로지 향락에 빠져 무신들을 불만을 심화시켰던 것입니다. 결국 1170년 의종의 보현원 나드리를 계기로 정변을 일으켜 문벌 귀족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