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왜 고려말에 많이 혼란스러웠나요
왜 고려는 공민왕 이후부터 계속 내분이 일어나고 외세에 휘둘린걸까요 조선으로 이성계가 천하를 도모할정도로 왜 고려는 망한건지 궁금합니다.
고려말 원간섭으로 인해 권문세족이 득세하였습니다. 이들은 원을 배후로 권력을 독점하고, 대규모 토지를 사유화하고 백성을 착취하였습니다. 이들은 강압적으로 민중의 토지를 빼앗아 농장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이 약화되고 명나라와 관계 정립이 새롭게 대두되었습니다. 특히 명의 철령위 설치 통보는 고려에 부담이 되었으며, 요동정벌이 추진되기도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왜구의 침략이 빈번하였으며, 홍건적도 2차례 침략했습니다.
이 당시 새롭게 등장한 신진사대부는 권문세족의 부패와 모순을 비판하며 개혁을 주장했으나 세력이 미약하여 한계에 봉착햇으며, 왜구와 홍건적의 침략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이성계 등 무인세력이 성장했습니다.
고려 말의 혼란과 멸망은 권문세족의 횡포와 사회구조 붕괴, 외세의 강한 간섭, 개혁의 한계, 외적 침입, 내부 분열 등이 겹친 구조적 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 개국과 같은 대변혁의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공민왕 이후 고려가 지속적으로 혼란을 겪고 외세에 휘둘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적인 정치를 추진하며, 권문세족의 권력을 억제하고 전민변정도감 설치 등으로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또한 원의 쇠퇴를 틈타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고, 몽골풍을 제거하는 등 민족적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권문세족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고, 개혁의 뿌리가 제도적으로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민왕 사후 곧바로 후퇴하게 됩니다.
공민왕이 암살당한 이후, 왕권은 급속히 약화되었고, 권력을 둘러싼 왕족과 신하들 간의 정쟁이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신흥 사대부 세력과 기득권을 가진 권문세족 간의 충돌, 외척의 개입, 왕위 계승 분쟁 등으로 조정은 끊임없이 내분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로 인해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지방은 다시 문란해졌으며, 국정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외교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원나라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고려는 자주성을 회복했지만, 곧이어 명나라와의 외교적 마찰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려 내부에서는 친명파와 친원파로 나뉘어 외교 노선을 두고 갈등이 격화되었고, 이는 다시 정치적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외교 노선 문제는 단순한 외교 정책을 넘어서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국론은 통일되지 못한 채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한편 왜구의 침입과 홍건적의 침공 등 외적의 위협도 고려를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왜구는 남부 해안 지방을 지속적으로 약탈했고, 홍건적은 수도 개경까지 침입해 왕이 피난을 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군사력은 약화되고, 백성의 불만은 극에 달해 농민 봉기와 민심 이반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내외적 위기 속에서 고려 후기의 국력은 급속도로 쇠퇴했고, 결국 신흥 무장 세력이 부상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성계로, 그는 왜구를 격퇴하며 명성을 쌓고, 위화도 회군을 통해 정치 권력을 장악한 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