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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부활한 설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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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오감도는 왜 투서가 수십장씩 날아 들었었나요?

안녕하세요? 연작시인 오감도는 1934년 7월24일 부터 8월8일까지 조선중아일보에 연재했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투서가 하루에도 수십장씩 들어왔다고 합니다. 왜 투서가 수십장씩 들어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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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예슬 전문가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원래는 30회를 목표로 연재를 시작했으나 "미친놈의 잠꼬대냐?", "그게 무슨 시란 말인가", "당장 집어치워라", "그 이상이란 자를 죽여야 해!" 등 독자들의 비난 투서가 빗발쳐 연재를 중단

    https://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23799

    이상의 시는 난해하고 기존 문법을 파괴하며 독특한 표현방식에 따라 당시 사람들에게 와닿지 못하게 된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이었지만, 독자들의 수용범위를 크게 벗어낫게 때문에 많은 비난과 투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전문가입니다.

    이상이 오감도는 우리 나라 최고의 이해 하기 난해한 시라고 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아직도 연구 하고 있는 시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니 일반 신문에 연재된 내용을 이해 하기 어려워 하는 일반인들은 많은 불만의 투서를 신문사로 보냈고 결국 30편으로 예정된 시는 15편으로 마감 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전문가입니다.

    당시 문학계는 옛 사상과 새로운 시도가 부딪히는 개도기적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의 시들은 현대기준으로도 파격적인 것들이 많이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시가 아니라 이상한 글쪼가리로 취급 되어서 불만의 편지가 많이 왔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