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홍경래는 과거에 관상을 봐 주던 관상가였었나요?
최근 유튜브를 통해 홍경래의 난을 재조명한 드라마를 보다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관군쪽에서 홍경래를 보고 '관상쟁이라더니'라는 대사를 보고 의문이 들었는데 혹시 홍경래가 관상가로서 활동한 적도 있었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런 이력을 가진 홍경래가 어쩌다가 난을 일으키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경래는 어릴 때부터 유학을 받으며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중에는 관상학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홍경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홍경래가 자신의 관상 지식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도왔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경래는 평남 용강 출신으로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고 이후 가산에서 서당을 운영하였습니다당시 조선 정부는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홍경래는 봉기를 계획하게 되었고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관상쟁이로 활동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홍경래가 관상쟁이로 활동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다만 뛰어난 언변과 풍채를 지니고 있었다는 기록만 남아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경래는 몰락한 양반이었으며 유교, 병법, 풍수지리 등을 익히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한 지식인이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경래는 유교적 교양은 물론 병서, 제반 술서, 특히 정감록 등에 통달했다고 합니다. 홍경래의 신분은 대개 몰락 양반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평민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고 경제적으로는 전답이나 노비를 지니지 못한 빈궁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결국 홍경래는 과거에 실패한 뒤 출세를 포기하고 집을 나와 풍수로서 각지를 전전하며 빈한한 생활을 하였는데 이때 당시 과거 제도의 부패상,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 삼정의 문란 등으로 인한 일반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체험하면서 사회의 모순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