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중 뭐가 더 정확한가요??
예를 들어 삼국유사에서는 주몽이 12세때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나와있고 삼국사기에서는 22세 때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나와있잖아요. 둘 다 확실하지 않은건 알지만 뭐가 더 믿음이 가는 것 같나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중 무엇이 더 정확한가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중 무엇이 더 정확한가' 보다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고려 시대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는 유교적 역사관이 나타나 있고, <삼국유사>에는 단군 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삼국 시대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1145년 인종(고려 제17대 왕)의 명에 따라 김부식의 주도하에 최산보(崔山甫), 이온문(李溫文), 허홍재(許洪材), 서안정(徐安貞), 박동계(朴東桂), 이황중(李黃中), 최우보(崔祐甫), 김영온(金永溫) 등 8인의 참고(參考)와 김충효(金忠孝), 정습명(鄭襲明) 2인의 관구(管句) 등 11인의 편사관에 의해서 편찬되었습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문벌 귀족 출신으로, 신라를 삼국의 중심에 놓고 유교적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띠라서 <삼국사기>는 유교적인 입장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신화나 전설을 제외시켜서 단군 신화도 빠져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고려 충렬왕 때 일연 스님이 쓴 역사책입니다. 이때는 전쟁으로 모두들 힘들게 살던 시절이라 일연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단군 신화를 포함하여 우리 역사를 고조선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개인적으로 쓴 사찬 사서이기 때문에 <삼국사기>처럼 문장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삼국사기》에 일부러 싣지 않거나 소홀히 넘어간 사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고려 시대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는 유교적 역사관이 나타나 있고, <삼국유사>에는 단군 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승려 '일연(1206년-1289년)'이 쓴 삼국시대의 역사책이며, 특히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의 유사를 모아 지은 사서를 말합니다.
삼국유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블어 현존하는 한국의 최고의 역사서로서,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작할 당시는 중국을 대부분을 지배하게된 몽골의 침략이 계속 되었던 시기로,
삼국사기는 방대하고도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 있어 중국 중심적인 경향이 많고 불교적 측면을 소흘히 다룬 면이 있는 방면에, 승려인 '일연'은 삼국사기에서 소흘히 다룬 자료들에 대하여 많이 보완을 하였습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대조적 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삼국사기는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정서라면, 삼국유사는 종교적인 입장을 견지한 야사에 해당합니다.
특히, 삼국사기가 본사라면 삼국유사는 야사에 해당하는데, 이는 '일연'이 삼국사기(김부식)에서 살리지 못한 단군조선, 가야, 이서국 등의 기록과 수많은 불교 설화및 향가를 기록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사기』는 나라에서 만든 역사책입니다. 왕명으로 김부식을 대표로 여러 명의 관리가 참여하여 만들었지요. 기본적으로 유교적 시각과 강한 나라를 받들어 섬기는 사대주의적 태도가 깔린 데다 형식과 내용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이에 반해 『삼국유사』는 승려인 일연과 그의 제자들이 썼기 때문에 불교적 색채가 짙고 형식과 내용이 비교적 자유로웠지요. 그래서 『삼국유사』에는 고대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불교와 민간 신앙, 그리고 신화와 전설 등의 이야기를 두루 담을 수 있었어요.더구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서 빠진 고조선, 부여, 삼한, 가야, 발해까지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 고대사를 아는 데 매우 중요한 역사책이라고 봅니다. 특히 고조선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로 기록했고, 단군 신화도 담고 있어요. 이것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큰 차이를 보여 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지요. 다만, 그 역사적 근거로만 따지자면 일연 스님이라는 개인이 쓴 그리다 보니 아무래도 김부식이 쓴 삼국 사기에 비해서 객관성이 좀 더 떨어진 다는 면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