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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한거북이
공손한거북이21.11.05

공자가 인육을 즐겨먹었다는게 사실인가요?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친 유교의 창시자 공자가 인육을 즐겨먹었다는게 사실인가요?

유교는 도덕과 윤리, 예의를 중요시하던 것 아닌가요?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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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난 사건의 진위도 제대로 판명하지 못하고 헛소문이 도는 통에 몇천년 전의 과거 사실의 진위를 저희가 제대로 알 수가 있을까요? 그러한 일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전혀 없는 일이고 그러한 말을 꺼내는 사람의 의도가 매우 불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증명할 수 없으니 그런말을 함부로 하는 거죠.


  • 배경

    공자의 제자 자로위나라에서 벼슬할 때 변란이 일어났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매우 복잡하다. 너무도 음탕했던 자신의 모친을 죽이려했던 태자 괴외가 실패하여 망명을 하고, 괴외의 아들이 군주(위출공)가 되어 아버지를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고, 괴외는 자신의 누나를 위나라 대신에게 시집을 보내 돌파구를 찾는데 이 누나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잘생긴 노비와 간통하고, 그의 아들 공회는 못마땅해하지만 사건에 휘말리고, 결국 괴외는 위나라로 돌아와 자신의 아들을 내쫓고 군주(위장공)가 된 그런 이야기다.

    자로가 괴외의 조카인 공회를 섬기고 있을 때 공회는 괴외에 의해 붙잡혀있는 상황이었다. 자로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공회를 구출하려 하자 괴외는 뛰어난 무사 두 명을 자로에게 보냈다. 이미 자로는 늙은 몸이라 이겨낼 수 없었으며 얼굴에 칼을 맞아 갓끈이 끊어져 갓이 땅에 떨어졌다. 그러자 자로는 "군자는 죽더라도 갓을 벗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갓을 다시 쓰고 정좌했고, 무사들은 자로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를 살해했으며 괴외는 그의 시신을 소금에 절여 해(醢)로 만들어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공자는 통곡을 하며 집안의 '해' 단지를 모두 엎어버리고 집 안을 서성거리다가 쓰러진 다음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실상

    한 마디로 공자의 애제자인 자로가 해()가 되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공자는 집 안의 해를 몽땅 내다버리고 다시는 해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제자가 맞이한 최후를 상기시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가 '공자는 인육젓갈을 즐겨 먹었는데 제자가 인육젓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뚝 끊었다'로 와전된 것이다.

    당연하지만 해()에는 젓갈이라는 뜻밖에 없다. '고기나 생선을 소금에 절이는 보존발효식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로가 소금에 절여져 젓갈 신세가 되었다고 해서 온 세상의 젓갈을 다 인육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당장 해(醢)란 단어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수백 차례 나오며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오늘날도 먹는 전통 한국 요리 중에는 식해(食醢)가 있다. '식해라니 인육 젓갈을 먹는다는 뜻이냐?' 라고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송 시기 시장에서 인육을 팔았다는 것도 젓갈을 팔았다는 것을 오독한 것이다.


    이러한 루머를 퍼뜨린 것은 친일 대만인의 황문웅의 "중국의 식인문화"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사람은 혐중국 성향이 짙고 일제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는 사람이다. 황문웅의 저서들은 중국을 까기 위해서 일본에서 편찬한 책이기에 엽기적인 식인드립들은 대부분 저기서 나왔다. 유비가 식인을 즐겼네 어쩌네 하는 글도 이것이 기원.

    황문웅의 저서 "중국의 식인문화" 반박

    그리고 다른 저서에는 납치가 한국의 전통 문화란 말도 나온다. 또 한국의 일제시대도 정의로운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남경대학살, 위안부 사건 등도 모두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철저하게 대만 친일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

    그런데 대만이 아무리 중국을 싫어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중국이지 대만 원주민이 아닌 대만인의 조상은 중국 본토에 살았을 것이고, 더욱이 공자의 후손은 현재 대만에서 대접받으며 살고 있으니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자식인설의 기원을 더 파고들면 일본 제국시기의 쿠와바라 지츠조라는 일본의 중국학교수가 저술한 <지나의 식인육풍습>(circa 1927)이라는 일련의 논문들이 있는데, 결국 황문웅도 이 논문들을 참조해서 현대에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전통과 중국인" 등 유교사대주의를 까기 바쁜 몇몇 서적에서는 이걸 사실인 것처럼 써놓기도 했다.

    저 책에서 얘기하는 식인 기록이란 것들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잔뜩 등장한다. 이런 논리라면 한국도 엄연한 식인 국가가 된다.

    살다보면 남을 음해하고 곤경에 처하기 위한 갖은 모략과 책략을 꾸미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정치계를 보면 갖은 루머와 음해공작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익히 알 수 있다. 옛 소련에서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비법으로 크게 2가지를 썼다고도 한다. 여자와 마약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차용되어져 정치계에서는 정적에게 경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인과 관련된 연예인을 싸잡아 뒤를 캐는 방식도 종종 쓰였다. 이런 음해공작의 타깃으로서 중국에게는 공자 같은 덕망 높은 위인들이 제격인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세종대왕이 근래 들어 친일역사학자들의 타깃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