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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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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개토풍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알려주세요

원종이 세조 쿠빌라이 칸에게 받아낸 불개토풍의 약속이 무엇인가요?

이 약속의 내용은 어떠한 것이고 어떠한 배경으로 약속을 하게 된것인지요?

불개토풍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개토풍(不改土風).

      고려는 몽골의 속국이 되더라도 고유한 풍습을 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231년(고종 18) 8월에 살리타이〔撒禮塔〕를 수장으로 한 몽골군이 고려를 침공하여, 12월에는 개경을 포위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주(龜州)의 박서(朴犀) 등이 선전하였으나, 개경이 포위된 상황에서 고려 조정은 항복을 결정하였습니다.


      몽골군은 북계 지역에 다루가치〔達魯花赤〕 72명을 남기고 철수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무신집권자였던 최우(崔瑀)는 곧이어 1232년(고종 19) 6월에 강화도로 천도하고 각지의 주민들을 산성과 해도로 입보시켜 몽골에 대한 항전을 준비하였습니다. 이에 1232년(고종 19)에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이 다시 고려를 침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수장 살리타이가 처인성(處仁城)에서 승장 김윤후(金允侯)의 화살에 맞아 사망하게 되면서 몽골군은 철수하였습니다.


      이후로도 몽골군은 1235~1239년에 당구〔唐古〕, 1247~1248년에 아무간〔阿母侃〕, 1253~1254년에 예쿠〔也窟, 也古〕, 1254~1259년에 잘라이르타이〔車羅大〕를 수장으로 하여 고려를 침입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몽골은 출륙환도와 함께 고려 국왕의 친조(親朝)를 통한 항복, 왕의 자제를 투르칵〔禿魯花〕, 즉 질자(質子)로 파견할 것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고려 측에서는 고종이 모후의 상중임을 구실로 1239년(고종 26)과 1245년(고종 32)에 종실 신안공 전(新安公 佺)을 왕의 동생이라 하고 입조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1241년(고종 287)에 종실 영녕공 준(永寧公 綧)을 왕의 애자(愛子)라 하고 양반 자제 10명과 함께 투르칵으로 보냈습니다.


      고려 측에서 여러 구실을 들어 고종의 친조를 실행하지 않고 출륙환도도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몽골의 공격은 칸 교체 등 내부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간헐적으로 계속되었습니다. 그에 대응하여 별초군의 활동과 다인철소민의 승전과 같은 민의 항전이 계속되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고려의 피해는 커졌습니다. 1257년(고종 44)에는 몽골이 다시 공격하는 한편으로 태자의 친조로 국왕 친조를 대체할 수 있음을 알려 왔습니다.


      이에 몽골의 요구를 받아들여 강화를 하자는 강화론이 힘을 얻게 된 가운데 1258년(고종 45)에 항전을 주장하였던 무신집권자 최의(崔竩)가 유경과 김준(金俊) 등에게 피살되면서 최씨 정권은 종식되었습니다. 이후 양국의 화의 교섭이 급속히 진행되었고, 1259년(고종 46)에 태자 전(倎)이 몽골 헌종 뭉케를 만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몽골로 향하였습니다.


      남송 원정길에 올랐던 헌종 뭉케가 도중에 사망하면서 태자 전은 남송 원정 중 북상하던 황제(皇弟) 쿠빌라이를 만나 그 병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마침 고려에서 고종이 사망하자, 쿠빌라이는 태자 전을 고려 국왕에 책봉하여 돌려보내니, 그가 원종(元宗)입니다.


      북상한 쿠빌라이는 동생과 칸의 자리를 두고 계승 분쟁을 거쳐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세조(世祖)입니다. 양자 사이에 화의가 성립되어 양국 간 전쟁은 끝을 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그 풍속을 바꾸지 않을 것〔불개토풍(不改土風)〕, 몽골 조정에서만 사신을 보낼 것, 적절한 시기를 보아 개경으로 환도할 것, 몽골군 철수, 다루가치를 두지 말 것 등을 요구하여 몽골 측의 승낙을 얻었습니다. 이후 1261년(원종 2)에 태자 심(諶)이 원나라에 입조하였고, 1264년(원종 5)에는 원종이 친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