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사관을 나가라고 해도 사관은 역사를 기록할 의무가 있고, 그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가지 않습니다. 왕이 나가랬다고 나가면 자기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의 중요성을 알고 일부러 후대에 담기기 위해 작성한 것이므로 왕조차도 함부로 열람하거나 수정할 수 없었습니다. 수정을 하게 돼도, 수정본을 따로 만들고 실록자체는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태종은 유독 자기에 대한 기록이 어떻게 남을지 불안해해서 사관을 거부하기도 했는데, 사관이 몰래 숨어들어가기도 하고, 궁궐담을 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왕이 낙마를 했고, 낙마한 것을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것까지 다 적었습니다. 그래서 태종이 담당사관을 유배도 보내면서 거부했지만, 사관들은 단체로 시위와 파업을 감행하면서 결국 태종이 굴복했습니다. 실록에는 사관 없이는 신하를 접견하지 않겠다며 왕이 항복하는 내용까지 있습니다. 사관은 걸어다니는 cctv였기 때문에 사관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가 뭔가 구린 일을 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연산군은 사관들을 여럿 죽여서 그 죽인 것까지 기록되어 결국 지근도 역사에 길이 남는 폭군으로 알려졌죠.
조선왕조실록은 원칙적으로 왕 앞에서도 사관이 물러나지 않고 기록하도록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왕의 말과 행동을 빠짐없이 적는 것이 국가 규범이었고, 왕도 이를 알면서도 간섭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관을 물리치라'는 요구는 법과 관례상 금지됐고 기록 내용은 왕조차 열람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