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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결 7호 작전이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려주세요

4월입니다.

4월하면 제주도 4.3사건을 떠올리게 되어 알아보던 중 결 7호작전이 나오는데

이는 제주 4.3사건과 어떠한 연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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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순금킹 시계퀸
      순금킹 시계퀸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7호 작전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제주도를 요새화한 사건을 말합니다.


      제주 4.3사건 당시 결 7호 작전으로 만들어진 진지가 이용된 사례있다고 합니다.

      슬픈 역사 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의 일본 본토 침공이 임박하자 대본영이 수립한 방어계획인 결호작전의 일부. 일본 본토가 아닌 지역으로는 유일하게 제주도가 포함된 경우를 말합니다.

      1945년 2월 9일, 일본의 방위총사령관은 각 방면군 사령관에게 6월경을 목표로 한 일본 본토결전 작전 준비의 완성을 명령하였다. 이를 암호명 '결호(決號)작전'이라 불렀는데,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미군이 필리핀에 이어 1945년 2월 이오지마를 공격하자 오키나와 본토와 규슈 등 서부 일본 상륙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1945년 3월 12일 대본영은 각 군 작전주임참모회합을 가졌다. 회의 결과 미군이 본격적인 본토 침공에 앞서 상륙군을 공중 엄호하기 위해 혼슈 인근 지역에 비행기지를 확보하려 조공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되었다.[1] 결호작전 지역 중에서도 미군의 보조 상륙지점으로 제주도와 홋카이도가 유력하다고 판단하여 결1호 작전과 결7호 작전이 보다 강도 높게 다뤄졌다.

      이에 따라 3월 20일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결7호작전' 준비요강이 한반도를 관할하던 제17방면군에게 하달된다. 그 내용은 2~5개 사단 규모의 미군이 1945년 8월 이후 제주도 또는 한반도 이남 지역으로 상륙할 것을 예상하고, 그 지점을 집중 방어하는 한편, 상륙부대를 향해 적극적인 공격도 감행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때 제17방면군에게 지시된 '국토결전작전 준비요강'의 요지를 보면, 결7호 작전으로 명명된 제주도에서의 결전작전을 위해 제58군사령부와 주력병력으로 2개 사단 및 1개 혼성여단, 기타 예하부대를 배치하도록 했다. 기동병단으로 한반도에 제121사단을 대기시키고 포병과 전차부대를 중국과 만주등지서 이동, 제58군에 직할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실제 결7호 작전이 진행되면 중국에 주둔하고 있는 관동군과 중국 방면군에거 2~3개 사단을 증강토록 했다.

      이러한 지시대강에 의해 제17방면군이 마련한 결7호 작전의 구체적인 준비요강은 아래와 같다.

      적의 상륙판단
      1. 북 규슈 방면 상륙 또는 조선 해협 돌파를 위한 기지로 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공략함.
      2. 위를 목적으로 한 남선(한반도 남부) 도서지대 공략.
      3. 대륙 교통차단을 위하여 남선(한반도 남부)지구 일각에 상륙.
      4. 위를 목적으로 하는 부산 상륙 강행.
      5. 정략을 목적으로 한 조선본토 중심지대의 공략.

      • 적의 가용병력: 2~5개 사단

      • 상륙시기: 차기 작전의 준비기간으로 판단해서 8월 이후로 예상됨.


      작전방침
      1. 주력으로 적의 주요 상륙점을 확보하고, 적의 침공에 제(除)해서는 일체의 전력을 결승점에 집중하여 적을 격멸함.
      2. 제주도는 당초부터 유력한 병력을 배치하고 독력으로 동 섬을 확보케 함.
      3. 병력의 기초배치: 부도 제2의 1, 2와 같음.
      4. 작전준비 완료의 시기: 작전준비는 8월 말 개성(槪成), 10월 말 완성을 목표로 함. 단, 제주도에서는 개성 시기를 7월 말로 예정함.

      출처: 나무위키 결7호작전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은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준비한다.

      이중 제주도에서의 작전은 결7호 작전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121사단, 독립 혼성제 108여단 등 모두 7만 5,000여 명의 병력을 두어

      미군과의 결전을 위한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를 배치하는 등 결전 준비를 진행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7작전은 1948년 4월부터 5월까지 진행된 대한민국 정부의 군사 작전으로, 제주도에서 공산군을 진압하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대규모로 집결한 정부군과 경찰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막대한 인명피해와 만연한 인권 유린을 초래했으며, 같은 시기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항쟁과 학살을 일컫는 제주 4.3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결7작전은 제주도의 폭력과 긴장을 고조시킨 요인 중 하나였으며, 제주4.3사건의 기폭제가 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 7호 작전은 1953년 7월 27일부터 7월 31일까지 한국전쟁 중에 이루어진 작전입니다. 이 작전은 한국 전쟁의 최종교섭을 위한 판문점 회담 이전에 이루어진 작전으로, 유엔군과 북한군 간의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결 7호 작전은 북한군이 유엔군 측으로 공격을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유엔군은 포위 작전을 실행하여 북한군을 막으려고 했으며, 이 과정에서 북한군과 중국군과의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북한군은 유엔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이 작전에서는 양측 모두 많은 인명과 장비 손실을 입었습니다.


      결 7호 작전은 한국 전쟁에서 중요한 작전 중 하나로, 이후에 판문점 회담에서 한국 전쟁의 종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