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은 서울 남쪽의 국방 요새로 건설되었습니다. 평지의 읍성과 산지의 방어 시설을 결합한 평산성 형태였으며, 다양한 방어시설을 갖추어 화포와 총기가 발달한 시대의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또한 화성은 방어 도시이면서 상업 도시로도 계획되었습니다. 십자형 도로변에 상가와 시장을 배치하였고, 정조는 수원 상인에게 인삼 재배권, 갓, 제조권 등을 부여하며 상업 진흥을 추진했습니다. 즉 정조는 화성을 서울과 남부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새로운 상업 중심지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수원 화성 건설에는 정약용이 설계에 참여한 거중기에 핵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거중기는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석재를 들어올리는 기계로 7.2톤의 돌 30명의 인력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성은 군사, 행정 상업 기능을 통합한 계획 도시이자 당대 실학자 동서양 기술을 결합한 혁신적 도시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