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복 이후 새로운 견해가 등장하는데 삼국사기에 첨성대의 기록이 등장하지 않으며 삼국유사에도 명칭과 용도, 사람이 오르내렸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 그렇다고 하기엔 내부가 너무 좁고 불편하며 천문 관측을 하는 시설인데 정작 다른 천문대처럼 산 위나 높은 곳이 아니라 왕궁 옆의 평지에 건설되었다는 점도 의문이 제기 되었기 때문에 첨성대의 역할이 천문대가 아니라 일종의 기념비, 제단, 창고 였을 것이라는 설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들은 추측에 불과할 뿐 문헌적, 고고학적 증거가 없어 확신이 불가능하며 주류 학계에서는 정사에 기록된 통설과 신라 천문기록의 정황 연구를 토대로 첨성대가 천문대였음을 정론으로 받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