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남이는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 거열형까지 당하게 됐나요?
조선 전기의 무관인 남이는 이시애어 난을 진압하고 여진 토벌등으로 공을 세우고 초고속으로 승진을 하다가 결국엔 역모죄로 처형을 당했는데 이 때 반대세력들은 어떤 명분으로 남이를 역모와 엮어버린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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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는 조선 세조 때의 무인으로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27세에 병조판서가 된 인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특히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1468년(예종 원년)에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죄로 능지처참으로 처형되었습니다.
남이가 역모를 꾀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예종은 즉위 직후 남이 등을 역모 혐의로 체포하여 처형했습니다. 남이가 북방을 평정한 후 지은 시 문구를 조작하여 역모의 의도를 드렀냈다고 주장했습니다.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를 "男兒二十未得國 誰稱大丈夫"로 조작한 것입니다. 또한 남이가 세조가 돌아 가시면 우리가 어린 임금을 몰아내고 영의정이 되어 나라의 정치를 마음대로 하자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남이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예종과 유자광의 정치적 계산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