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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도화지113
하얀도화지11323.07.12

중국의 고구려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이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뭐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몇년전부터 중국은 지속적으로 고구려 역사가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 고구려 종족은 고대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
- 고구려는 중국 영토내에서 건국됐고 시종일관 중국 영역내에서 존재
- 고구려 건국지는 한군현에 속함
등 이런 근거로 자기네 역사라고 하는데,

이를 반박할 근거는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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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에 대하여 중국은 고구려가 독립된 고대 국가가 아닌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을 조공 책봉 관계를 맺은 중국의 신하국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의 수당전쟁도 국제전이 아닌 내전이고 고구려인의 종족적 기원은 한인의 요소를 가졌다고 말하며 고구려 멸망 후 유민들은 대부분 당나라로 유입되어 한족과 동화되었고 이후 건국된 고려는 고구려와 연관성이 없다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 측의 주장에 모순점이 존재하는데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점에 대해 다양한 사료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속 고구려가 이역열전에 기록되어있는 점으로 이역열전이란 중구이 외국에 대한 기록을 담은 것으로 해당 부분에 기록된다는 것 자체가 중국이 고구려를 외국으로 인식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중국의 조공책봉 관계로 인한 신하국 주장과도 연결되는데 조공책봉이라는 것은 국가 간의 외교 관계를 의미하며 이는 국가간의 외교적인 관계를 수립한 것이지 신하 혹은 국가의 지방정권이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 고구려인들의 종족은 한족이 아닌 부여 계통의 예맥족으로 이는 부여의 기원과 주몽이 부여인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쉽게 확인됩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 멸망 후 , 대부분의 유민은 통일신라나 발해로 유입되었고 일정수의 사람들이 당으로 이주하기는 했으나 이는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강제적인 이주였습니다.

    수적으로도 고구려의 인구가 대략 300만이었는데 당으로 유입된 인구는 고작 20만이었으니 대부분이 당나라로 이주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게다가 신라 이후 건국 된 고려는 뚜렷하게 고구려의 계승의지를 표방했는데 이는 무엇보다 국호에서 드러나며, 고구려는 국호인 고구려 외에도 종종 스스로를 고려 라 칭하기도 했고 고려라는 국가 국호가 이러한 고구려 계승이라는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의 경우는 한국사의 범위 안에 속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우리는 꾸준히 고구려를 한국사로 인식했지만, 중국은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찬한 적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옛 중국인들은 한반도와 만주에 사는 사람들을 동쪽에 사는 이민자들을 비하하는 멸칭, 즉 동이라고 불렀다. 또한 전통적인 중국의 한국인 비하 표현인 가오리방쯔를 생각해보자. 이미 한국을 고(구)려놈이라고 부르고 있는 데에서 한국이 고구려 후손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중국은 고구려를 전통적으로 중국사로 여기지 않았으나, 현대에 들어서서 자국사로 편찬하려는 이중적인 행동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고구려의 지리적 측면에서 봐도 고구려의 인구는 한반도 내 대동강 유역 평야 지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구려가 만주 지역을 꽤 많이 차지한 것, 그리고 오늘날의 한반도 쪽 영토보다 중국 쪽 영토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아진 것은 4세기 말까지 가서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한반도 쪽에 대부분의 영토를 두고 있었다. 건국 초기부터 함경도 쪽의 옥저, 강원도 쪽의 동예를 자국의 영역에 편입해 나갔는데 이는 북쪽에서 강국인 부여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북쪽 땅은 춥고 척박했으므로 비교적 기름진 서북한의 평안도, 황해도보다는 쓸모가 덜 했다. 때문에 후반기에 가서는 만주보다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한 나라로 변모했고 주요 3경 중 2개가 평안도, 황해도에 있었다. 수도들 또한, 졸본과 국내성은 중국령이라고는 하나 압록강과 거의 붙어있는 수준으로 가깝고 평양은 현재 북한의 수도다.

    또한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이질성이 있었다고 해도 연관이 없다고는 볼 수는 없고 연관은 있되 이질적인 집단이 정체성 융합을 통해 단일민족 집단이 되는건 흔한 일이다. 이러한 정체성 융합은 적어도 삼국시대 말기부터 시작해서 고려시대 중후반까지 진행되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중국은 오히려 한국보다도 불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