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 가문은 조선 시대 명문가 집안으로 한국이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자 국권 수호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특히 국권 피탈 직후 6형제는 가산을 처분하고, 서간도 삼원보를 집단 이주하여 삼원보 등 독립 운동 기지를 건설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한인 자치 단체를 기반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매진했습니다. 이는 장기적 독립 투쟁을 위한 준비이고, 실제로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무장 투쟁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만약 우당 이회영 형제들이 만주가 아닌 미국행을 선택했다면 오히려 독립 운동은 수월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회영 선생은 한반도와 가까운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가까운 지역, 그리고 동포 사회를 배경으로 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