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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밝은큰고니2724.01.29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는 실제로 이방원과 정몽주가 지은 것인가요?

고려말 고려가 멸망하기 전에 태종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하여가>라는 시조를 불렀고 이에 정몽주가 고려에 대한 충절을 담은 <단심가>라는 시조를 불렀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이 두 시조는 이방원과 정몽주가 지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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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하여가'와 '단심가'는 이방원과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나눈 시조라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 시조들이 실제로 그 당시에 지어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시조들이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허구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문헌 기록에서 '단심가'는 1617년 간행된 '해동악부'에서 처음 소개됩니다 1439년 편찬한 정몽주 문집 '포은집' 초판에는 이 시가 수록되지 않았고, 1719년 정몽주 후손 정찬휘가 제작한 포은집 속록에 들어갔습니다. 단심가 저자에 대한 의심은 역사학계뿐 아니라 일찍이 국문학계에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즉 정몽주를 충절의 표상으로 만든 이야기 '선죽교 사망설'과 '단심가'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창작의 산물일 확률이 높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말선초에 성리학에 바탕을 둔 신진 사대부가 등장하였고 목은 이색의 휘하에 포은 정몽주 등의 절의파와 삼봉 정도전 등의 역성혁명파로 나뉘게 됩니다. 태종이 될 이방원은 이성계의 부인 강씨의 명에 따라 정몽주를 회유하려고 했으나 정몽주는 고려 체제를 그대를 두고 개혁하려고 하였고 이방원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이방원의 하여가에 답하여 정몽주가 단심가를 부르자 이방원은 회유가 어렵다고 판단해 술취해서 선죽교를 지나가는 정몽주를 철퇴로 때려 죽이고 맙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하여가는 『해동악부(海東樂府)』 『포은집(圃隱集)』, 단심가는 『병와가곡집』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에서 각각 이방원과 정몽주의 시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