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테르미도르반동은 왜 로베스피에르의 급진적 혁명노선을 끝냈나요?

로베스피에르가 결국 자신이 만든 공포정치의 희생자가 되는 테르미도르반동이 일어났다고 배우는데, 그를 지지하던 세력 내부에서 왜 이런 반전이 일어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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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3년 국민공회 시기 프랑스는 대외적으로 대프동맹군과의 전쟁, 대내적으로 반란과 지방의 반혁명, 식량 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와 지코뱅파는 이러한 위기를 이유로 강력한 혁명 정부와 공포정치를 정당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1794년 여름에는 프랑스군이 플뢰뤼스 전투에서 승리하는 등 전쟁 상황이 유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외침이 줄어들자 일부 의원들 사이에는 공포 정치의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개인의 권력 유지를 위해 공포 정치를 수단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더욱 급진적인 에베르파, 공포 정치의 완화를 주장한 당통파가 제거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로베스피에르에게 좌우 양쪽을 잃고 고립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당시 공민공회의 의원들에게는 생존이 불안해진 것입니다. 결국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자라는 결심이 폭넓은 지지를 얻어 르베스피에르가 단두대에 오르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로베스피에르가 자신이 만든 공포정치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표현은 상당히 정확합니다. 다만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공포정치 자체의 희생자라기보다 공포를 정치적 통치수단으로 확대하면서 동맹과 지지 기반을 스스로 파괴한 결과 몰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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