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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저빌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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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금속노조의 역사는 어디에서 부터 시작되었나요?

금속노조의 최초 시발은 독일에서 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속노조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가 궁금하며 단결될 수 있었던 계기, 사건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상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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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아하(Aha) 노무상담 분야 전문가 이슬기노무사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 드립니다.

      금속노조와 관련한 부분은 해당 노동조합의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접하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래의 링크를 공유드리오니 참고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http://www.kmwu.kr/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아하(Aha) 노무상담 분야 전문가 차충현노무사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 드립니다.

      • 전국금속노조의 전신은 1998년 2월 15일에 출범한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이다.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과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전국자동차산업노동조합연맹 이 통합해서 출범한 조직으로 당시 조합원이 무려 20만명이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직후 이어진 구조조정,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를 거치며 조합원 수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당시 구조조정, 정리해고 반대 투쟁 과정에서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대응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추진하여 2000년 대의원대회에서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기로 공식 결의한다.

      • 그러나 정작 핵심이 되었어야 할 대기업ㆍ대공장 노동조합들은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에 비협조적이거나 무관심하였고, 그래서 일단 전환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중소기업, 하청업체 노동조합들을 중심으로 산업별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01년 2월 108개 사업장에 3만명의 조합원으로 산업별 노동조합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출범하였으며, 대기업ㆍ대공장 노동조합들은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를 유지한체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에 잔류하였다. 또한 출범 당시 전국금속노동조합도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을 상급단체로 두었다.

      • 이와중에 2004년 9월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은 조합원 2만명이 소속된 현대중공업(=정규직)노동조합을 제명하였다. 당시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비정규직 차별철페를 외치며 분신한 비정규직 노동자 박일수씨를 외면하고, 오히려 회사 경영진들과 야합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그들의 투쟁을 탄압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실제로 당시 현대중공업의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차별대우에 무관심했고, 박일수씨 분신 이후에는 "박일수는 열사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해하고 탄압했다. 이들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금속노련(한국노총의 금속노련과 헷갈리지 말자)의 투쟁지침도 무시하고 심지어 박일수씨 영결식장에서 꺵판을 치는 등 패악질을 부렸다. 이 사태는 민주노총과 전체 노동운동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고, 기존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로는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 이에 따라 2006년 현대자동차기아한국지엠쌍용자동차 4개 완성차와 나머지 대다수 대공장 노동조합들이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전국금속노동조합으로 가입하면서 조합원이 급증하였고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이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한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도 해산한다. 출범 당시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조합원 15만명으로 민주노총 내 단일 노동조합 중에서 최대 규모의 노동조합이 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 안녕하세요? 아하(Aha) 노무상담 분야 전문가 김형규노무사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 드립니다.

      문의하신 사항에 대하여 노동관계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바는 없음을 알려드리며, 보다 자세한 사항은 전국금속노동조합(http://metalunion.nodong.org/)을 통해 해결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아하(Aha) 노무상담 분야 전문가 권혁일 노무사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 드립니다.

      - 1998년 2월 15일에 출범한 금속산업연맹은 통합 첫해에 바로 산별노조 건설사업에 착수하여 1999년 3월 27일 제4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2000년 10월 금속산별노조 건설’ 및 ‘금속산별노조 건설추진위원회 구성’을 조직의 방침으로 결정.

       

      - 제4차 임시대의원대회의 결정에 따라 산별추진위는 99년 4월 14일 제1차 회의를 통해 운영규정 및 세부사업계획안을 마련. 7월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산별 추진위 제4차 회의에서 <가칭>금속노조 건설계획 초안과 <가칭>금속노조 건설을 위한 99년 하반기 사업계획(안)을 검토. 그리고 8월20~21일에는 산별추진위원 전국수련회를 개최하여 10개 지역 53개 노조 84명이 참석하여 교육 및 토론

      - 1999년 9월 4일에는 연맹 제5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산별노조 건설계획(초안)’을 조직내 공식 토론자료로 채택.

       

      - 10월 20일에는 민주노총 및 5개 노동단체가 참석하는 산별노조 건설 중 앙공청회가 열렸으며 12월 10~11일 110개 노조 160명이 참석한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회가 개최되어 산별노조에 대해 토론

      - 마침내 2000년 1월 22일 금속산업연맹 3년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연맹 소속 전 노조는 2000년 10월에 조직형태변경과 규약개정을 일제히 실시하고 11월 창립대회를 개최.

       

      - 조직의 중앙집중화를 곧바로 관료제화와 연결시킨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노사정위윈회에서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에 합의한 사실, 98년 현대자동차․만도의 정리해고 반대투쟁, 1999년 한라중공업 투쟁 등 단위사업장의 투쟁을 강력한 전국 공동투쟁으로 이끌지 못한 연맹과 민주노총 등 상급노조에 대한 불신 등 당시의 상황도 연관되어 있음. 이들 쟁점을 둘러싼 논란 끝에 결국 기업지부를 인정하고, 기존의 기업별 조직체계의 상당한 부분을 그대로 온존시키기로 하면서, 2000년 8월 31일 대의원대회에서는 결성시기를 2001년 2월로 연기하고 조직체계는 이원 체계로 할 것으로 결정함.

      (고용노동부 - 노사조정과, 자료 일부 발췌)

    • 안녕하세요? 아하(Aha) 노무상담 분야 전문가 전재필노무사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 드립니다.

      전태일의 죽음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재확산되며 많은 노동조합이 결성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전태일 동지의 마지막 외침에서 시작해, 전태일의 정신을 계승하는 전국노동자대회는 1988년 노동법 개정을 외치는 5만 노동자가 처음 만들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아하(Aha) 노무상담 분야 전문가 유동근 노무사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 드립니다.

      전신은 1998년 2월 15일에 출범한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이다.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3]과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전국자동차산업노동조합연맹[4]이 통합해서 출범한 조직으로 당시 조합원이 무려 20만명이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직후 이어진 구조조정,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를 거치며 조합원 수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당시 구조조정, 정리해고 반대 투쟁 과정에서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대응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추진하여 2000년 대의원대회에서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기로 공식 결의한다.

      그러나 정작 핵심이 되었어야 할 대기업ㆍ대공장 노동조합들은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에 비협조적이거나 무관심하였고, 그래서 일단 전환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중소기업, 하청업체 노동조합들을 중심으로 산업별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01년 2월 108개 사업장에 3만명의 조합원으로 산업별 노동조합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출범하였으며, 대기업ㆍ대공장 노동조합들은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를 유지한체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에 잔류하였다. 또한 출범 당시 전국금속노동조합도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을 상급단체로 두었다.

      이와중에 2004년 9월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은 조합원 2만명이 소속된 현대중공업(=정규직)노동조합을 제명하였다.[5] 당시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비정규직 차별철페를 외치며 분신한 비정규직 노동자 박일수씨를 외면하고, 오히려 회사 경영진들과 야합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그들의 투쟁을 탄압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실제로 당시 현대중공업의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차별대우에 무관심했고, 박일수씨 분신 이후에는 "박일수는 열사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해하고 탄압했다. 이들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금속노련(한국노총의 금속노련과 헷갈리지 말자)의 투쟁지침도 무시하고 심지어 박일수씨 영결식장에서 꺵판을 치는 등 패악질을 부렸다.[6] 이 사태는 민주노총과 전체 노동운동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고, 기존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로는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2006년 현대자동차기아한국지엠쌍용자동차 4개 완성차와 나머지 대다수 대공장 노동조합들이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전국금속노동조합으로 가입하면서 조합원이 급증하였고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이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한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도 해산한다. 출범 당시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조합원 15만명으로 민주노총 내 단일 노동조합 중에서 최대 규모의 노동조합이 되었다.[7]

      살펴보면 전신인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이 1998년 출범할때 20만 명이었는데, 2015년 현재 금속노조는 15만명으로 17년 사이에 오히려 5만 명이 줄었다! 그나마 14만명대까지 떨어졌던 이명박 정부 때에 비해서 약간 조합원 수를 늘린 것이다. 조합원이 줄어든 이유는 일단 2만명의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을 제명[8]한 것,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로 인한 조합원 감소, 그리고 대기업들이 계속해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정규직 숫자를 줄이고 대신 비정규직과 외부 하청업체를 늘려왔는데 이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기존 조합원들이 나이가 들면서 정년퇴직으로 자연 감소하고 승진으로 조합원 대상에서 빠지게 되었는데[9], 승진자는 회사를 나간 게 아니므로 충원이 안 되며, 그 외 자연 감소 인원도 자동화 외주화로 그만큼 충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약 15여년째니 갈수록 더 노조 가입한 인원이 줄수밖에 없다..

      2013년 이래 다시 친 민주노총 성향의 조합원들이 집행부를 맡기 시작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서 2016년 12월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전국금속노동조합에 가입함으로서 2017년 현재 조합원 수가 16만명을 넘었다.

      한국노총 산하에 이름이 비슷한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이 있어서 헷갈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쪽은 산업별 노동조합은 아니고 각 기업별 노동조합의 연맹으로 약칭은 '금속노련'이다.[10] 최근에는 경제위기와 정권의 실정으로 인해서 양 조직간 연대투쟁도 자주 하고 있다.

      금속노조 출신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인지도가 있는 인물은 대표적으로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심상정 현 정의당 국회의원이 있다.[11] 1998년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이 출범할 때 초대 위원장 단병호, 사무처장 심상정 체제였으며, 1999년 단병호 위원장이 구속되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이었던 문성현이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2대 위원장으로 당선돼서 조직을 이끌었다.[12]

    • 안녕하세요? 아하(Aha) 노무상담 분야 전문가 변수지노무사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 드립니다.

      금속노조에 대하여는 금속노조 홈페이지에 잘 설명되어있습니다.

      금속노조 홈페이지에 접속하셔서 금속노조의 역사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https://kmwu.kr)

    • 안녕하세요? 아하(Aha) 노무상담 분야 전문가 박정준노무사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변 드립니다.

      금속노조는 금속노조 소개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http://www.kmwu.kr/bbs/board.php?bo_table=ce_B01) 한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일제, 미군정, 군부독재정권의 엄혹한 탄압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단결과 투쟁의 정신으로 노동운동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왔다. 뿐인가. 87년 뜨거운 여름을 열어제꼈던 노동자대투쟁의 선봉이라는 금속노동자의 자부심은 이제 또 한번의 역사적 도약을 위한 밑불로 타오르고 있다.

      우리는 금속노조 창립의 이유를 97년말 IMF 외환위기로 인한 기업별 노조의 한계에서만 찾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노동자대투쟁의 조직적 성과인 전노협과 민주노총으로 이어져 내려온 '산별노조 건설'선언을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내고 전체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에 앞장서며, 160만 금속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한 불씨로, 더 나아가 노동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평등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선봉대로 자임하고자 한다.

      지난 2년여 산별노조 건설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과 토론이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금속노조 건설에 대한 회의감이 존재했음을 우리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우리 자신의 조직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결정에 따라, 우리의 조직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한 주체적 사명감으로 오늘 첫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오늘의 창립대회는 이 자리에 참석한 동지들만의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하고자 한다. 오늘 이 순간까지 창립대회에 합류하지 못한 금속산업연맹 조합원동지들과, 더 나아가 이땅의 모든 금속노동자 동지들이 채워야 할 몫이 우리의 임무로 먼저 주어 졌음을 인식하고 한걸음 먼저 출발하는 심정으로 오늘 창립선언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