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분서갱유'란 말은 '분서'와 '갱유'가 다른 사건입니다. 훗날 이것을 합쳐서 '분서갱유'라고 한꺼번에 말하는 것입니다.
'분서'사건이란 이사라는 사람이 옛 사상과 제도에 매달려 있다면 통치에 해로울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에 의약 · 점술· 농업 등의 책을 제외한 제자백가의 책들과 시(시경), 서(서경), 진을 제외한 국가들의 역사서를 불태울 것을 주장하여 이를 실행한 사건입니다.
'갱유'사건은 1년 뒤 후생과 노생 등이 실패로 끝난 진시황의 불로초 탐색을 놓고 '분서'사건 때 "책을 태워 버려 고전 공부를 안해 학식이 부족해 불로초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진시황을 비판했습니다. 분노한 진시황은 전국의 불온 사상가 460여 명을 함양에 매장시킵니다.
이 두사건은 합쳐서 '분서갱유'라고 합니다. 진시황은 이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촉망받고 유능한 군주였지만, 이 사건 이후로 폭군의 명망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