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무과에서 급제했다고 했는데, 등수로는 몇등이었을까요?
충무공 이순신이 32세에 무과 시험에 응시해서 급제를 했다고 힙니다.
그런데 장원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등수로는 몇등하며 급제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정중한해파리168입니다.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 이순신 장군의 무과 급제 등급은 '병과(丙科) 제4인(第四人)'이다. 여기에서 '병과'란 '과거 급제 등급'을 말하는데, 등급순으로 갑과(甲科)-을과(乙科)-병과(丙科)로 구분되어 있었다. 단순히 외면만 본다면 가장 낮은 등급인 셈이다. 갑과 1등은 '장원(壯元)'이라고 하고 종6품 품계를 주며, 나머지 갑과 인원에게는 정7품, 을과는 정8품, 병과는 정9품의 품계을 주었다.
그러나 법제상의 선발 인원이 갑과, 을과, 병과 모두 동수였던 것이 아니라, 갑과는 3명, 을과는 5명, 병과는 20명이었기 때문에 병과에서 가장 높은 사람(병과 제1인)은 종합 9위가 되고 최하위자(병과 제20인)는 종합 28위가 된다. 즉, 이순신은 병과 제4인이었기 때문에 전체 12등이다. 28명 중에 12등이면 중간(+) 정도가 된다.
이순신이 급제한 1576년(선조9)의 병자식년(丙子式年) 무과에서는 29명(갑과 3, 을과 5, 병과 21)을 뽑았기 때문에 상위 42% 성적이다. 그리 높은 등급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과 급제자 29인 중에서 이순신 등 4인을 제외한 '25인'이 현직 군관(軍官, 하급 장교 등 현역 신분)이었다. 음직(음서제도), 천거, 자원, 징집 등의 형식으로 이미 군문(軍門, 무관의 길)에 들어섰던 사람들인 것이다.
조선시대의 문과와 무과 과거 시험에는 정3품 당하관 이하의 전현직 관리도 응시할 수 있었는데, 급제하면 정식 관직에 임명하거나 품계를 승진시켜 주는 특혜를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미' 관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과거 시험에 응시했다. 아무리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도 문과 또는 무과에 급제해야 선망받는 관직이나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특히 그러했다.출처: https://lembas.tistory.com/8 [아정(雅亭):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