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충흔 전문가입니다.
스티로폼에 아세톤을 부었을 때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화학적 연소나 분해가 아니라, 고분자가 용매에 녹아 들어가는 물리화학적인 용해 과정입니다.
스티로폼의 본체인 폴리스티렌은 수많은 스티렌 분자가 사슬처럼 길게 연결된 고분자 물질입니다. 제조 과정에서 이 고분자 속에 공기를 불어넣어 부피를 팽창시키는데, 실제 스티로폼 부피의 95% 이상은 미세한 방(cell) 안에 갇혀 있는 공기층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흰색 덩어리는 사실 아주 적은 양의 플라스틱이 거대한 공기 주머니들을 붙들고 있는 구조인 셈입니다.
여기에 아세톤을 부으면 '끼리끼리 녹는다'는 유기화학의 원리가 작용합니다. 폴리스티렌 사슬과 아세톤 분자는 서로 극성이 유사하여 인력이 작용하는데, 아세톤 분자들이 폴리스티렌 사슬 사이사이로 침투하여 단단하게 엉켜 있던 사슬들을 풀어버립니다.
사슬의 결합이 느슨해지면서 공기를 가두고 있던 미세한 벽들이 힘없이 무너지게 되고, 그 안에 갇혀 있던 막대한 양의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공기층이라는 지지대를 잃은 고분자 사슬들이 아세톤에 녹아 끈적한 액체 상태로 뭉치게 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부피가 수십 분의 일로 줄어드는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