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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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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불교의 불상 목을 자른 게 일본군이 아닌가요?

조선시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던 절에 있던 불상이 전부 목이 잘려있다는데요.

그게 일본군이 임진왜란 때 저지른 만행이 아닌가요?

그럼 누가 그런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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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불상의 머리가 잘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조선시대 유교 정책입니다. 유교는 불교를 미신으로 여겼고, 불교 사찰과 불상을 파괴하거나 훼손했습니다. 특히 숙종과 정조는 불교를 탄압하여 많은 불상이 파괴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야외에 있는 불상들의 머리가 훼손된 이유로는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와 외적의 침입,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 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설은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영훈 전 국립경주박물 관장은 “조선왕조실록에는 땀을 흘리는 불상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유생들은 세상을 현혹 시키는 것으로 간주하여 불상을 파괴 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니까 당연히 조선사람이 했습니다.

    현대 사람이 보기에는 불교유적이던 유교유물이던

    둘다 귀중한 문화유산이지만

    조선사람들 입장에서 불교라는 건

    반란당해서 망한 전 왕조가 믿던 문화이자

    썩빠져서 나라 망하게 만든 불안한 종교였습니다

    그러니 숭유억불이라며 불교를 매우 차별했죠

    좀 오래되고 큰 절이 다 산에 있는 것도

    조선시대때 도시에 있던 절들은 다 박살났기 때문이에요

    일본은 오랫동안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한반도의 불교 유산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들 나라로 가져갔을 뿐이죠

  • 안녕하세요. 장경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상의 머리는 왜 없어진 걸까요? 우선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합니다. 먼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들 수 있지요. 지진이 나면 받침대 위에 있던 불상이 굴러 떨어지는데, 이때 가장 약한 부분인 목이 부러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또 몽골군의 침입이나 왜란·호란과 같은 전란(戰亂) 때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조선시대 억불 정책으로 일부러 불상을 훼손했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말합니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조선왕조실록》에는 땀을 흘리는 불상에 관한 기록들이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유생(儒生)들은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으로 간주해 불상을 파괴했다"고 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현종실록'을 볼까요? "현종 3년(1661) 1월 4일 호남 담양에 있는 보국사(報國寺)의 세 금불상에서 저절로 땀이 흘러나왔다고 감사 이태연(李泰淵)이 급보를 띄워 보고했다." 얼마 후 1월 20일에는 대사간 민정중(閔鼎重)이 임금께 글을 올립니다. "쇠와 흙으로 빚은 불상의 몸체에 이슬기가 맺히는 것을 보고 땀이 흘렀다고 하면서 백성을 현혹시키고 민심을 동요시키고 있으니 그 의도가 매우 삿되고 흉측하기 그지없습니다. 이태연은 엄하게 죄를 묻고, 땀이 흘렀다는 불상은 모두 부수는 한편…."


    정동주씨는 '부처, 통곡하다-조선 오백년 불교탄압사'(이룸)라는 책에서 "땀 흘리는 불상에 대한 대응책은 크게 3가지였다"면서 "목불(木佛)은 태워버렸고, 석불이나 금동불은 깊은 강물이나 바다에 던져버렸다. 다른 하나는 도끼나 몽둥이로 불상의 목 부분을 쳐서 머리를 떼어내는 것이었다"고 썼습니다.


    분황사 우물 속에서는 머리가 없는 불상의 몸체에 비해 적은 수의 머리가 발견됐습니다. 이 불상들은 머리가 잘리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깊은 우물 속에 버려지는 이중의 수난을 겪었다고 볼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