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라는 말이 생긴 일화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의 삼국지연의 중 제갈공명과 사마의의 싸움에서 유래된 말이다.유래가 되었던 중국 본토는 말할 것도 없고, 타국인 조선이나 일본의 문서나 기록에서도 자주 인용되었던 문구이다. 보통은 공명 쪽을 부각하여 뛰어난 사람, 지략, 장수 등을 나타내지만 사마의 쪽을 부각하여 겁쟁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조금 응용해서 진짜로 사망한 사람이 아니라 일선에서 물러났거나 모종의 사유로 몰락한 사람이 자신을 몰락시킨 사람의 발목을 잡았다든지, 스포츠의 경우 그날 출전하지 않거나 퇴장당한 선수가 상대팀의 기세를 꺾어놓는 등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상황이 아닌 사람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묘사할 때도 종종 사용한다.조선왕조신록에선 "사순신차생왜"죽은 이순신이 산 왜놈을 물리쳤다. 라고 쓰이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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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스타일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파블로 피카소는 현대 미술의 발전에 혁명적인 공헌을 하여 미술계에서 천재로 널리 인정받는다. 1881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나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고 많은 작품을 남긴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입체파, 초현실주의, 신고전주의 등 다양한 스타일과 기법으로 유명한데 회화, 조각, 판화 및 도자기를 포함하여 일생 동안 50,000개 이상의 예술 작품을 창작하였다.예술계에 대한 피카소의 영향은 형태와 스타일에 대한 그의 혁신적인 접근 방식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전통적인 기법에서 벗어나 추상적이고 표현력이 뛰어난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모양, 색상 및 선을 사용하는 데 집중했으며 특히 그의 입체파 그림은 사물을 기하학적 형태와 평면으로 분해하여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전통적인 미술에서 급진적으로 출발하였다.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표현을 수용하려는 운동인 모더니즘 발전의 중심인물로 그의 작품은 새로운 스타일과 기법을 탐구함으로써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수많은 다른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오늘날 피카소의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볼 수 있으며 그의 유산은 계속해서 예술가와 예술 애호가 모두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예술 분야에 대한 그의 공헌으로 그는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의 천재성은 계속해서 널리 칭송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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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감소 노령화되면 어떤 사회현상이 생길까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구가 이런식으로 줄고 고령화 된다면 당연히 멸망밖에 없습니다. 일손부족에 기업이 도산하고 고령인구 연금바닥에 질병인구만 늘겠지요...인문학적 접근보다 무조건 아이1명당 수당을 늘리고 2명은 따블, 세명은 따따블로 묻고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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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나 레트로라는 장르가 음악 패션 문화 통틀어 유행인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복고풍의 재해석’이라고도 불리는 이 레트로는 ‘레트로스펙트’의 줄임말입니다.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모습을 본뜨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흔히 복고풍이라고도 말합니다. 과거에는 패션의 한 트렌드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문화상품, 식료품 , 음악 장르,패션 등에 고르게 나타납니다. 그것은 향수~~ 가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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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시티란 단어를 가끔 본적이 있는데 무슨뜻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어휘 그대로 천천히 가는 도시.모든게 천천히 적용되는 도시. 라는 뜻입니다.즉 조금 불편해도 힘들어도 30년, 50년, 100년전을 모토로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도시라는 뜻입니다.지구가 병들어 요즘 예측 못하는 자연재해가 많아지면서 조금더 친환경적인 시도를 하면서 생겨나고 유래된 어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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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서 역대 프리킥을 가장 많이넣은 선수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형범은 에닝요(전북)이 가지고 있는 K리그 프리킥 최다골(17골)을 기필코 깨트리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에닝요가 K리그 프리킥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기록은 한국인이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퇴 전까지 반드시 경신하도록 하겠다"라고 앞으로의 선전을 다짐했다.2013년도 기록인데 10년이 지났으니 깨졌겠지요? 17골이라는데..... 또 프로선수 생명도 있고, 다른나라 이적도 있으니....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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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이라는 고사성어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참고 계속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음을 말한다.<마부작침 유래>시선이라 불렸던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백이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그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에 들어가 수학했는데 어느날 부턴가 공부에 싫증나기 시작했다.그래서 그는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집을 향해 걷고 있던 이백이 계곡을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다. 이백이 물었다."할머니, 지금 뭘하고 계세요?""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이백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그럼,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할머니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이백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여기서 생각을 바꾼 그는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그 후 이백은 마음이 해이해지면 바늘을 만들려고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던 노파의 모습을 떠올리며 분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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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라는 작품의 특징은 무엇이고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돈키호테가 최고의 소설이라고 호평 받는 이유는 형식과 내용 두 가지에 걸쳐 있다. 우선 형식 면에서는 그 안에 근대적 맹아가 다 들어있다. 17세기 초 작품인데 상호 텍스트성, 작가의 죽음, 독자비평 같은 것들이 다 나온다. 그 이전 및 비슷한 시기, 심지어 이후의 문학조차 현대인이 읽으면 매우 낯설 정도로 현대 문학과 괴리가 큰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흔한데, 돈키호테는 그런 점에서는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내용 면에서는 우리가 인간이기를 잊을 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제 모습을 잊을 때,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 정치, 사법체계, 경제는 어때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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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파스텔과 크레파스의 원료 차이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크레파스는 왁스 함량이 높아서 좀 더 단단한 편이고 오일파스텔은 오일 함량이 높아 부드럽게 발립니다. 그래서 크레파스보다는 오일파스텔이 그라데이션 내기가 더 수월한 편이에요 :)크레파스는 크레용과 파스텔의 특성을 절충한 것으로, 제조법은 미리 정해진 배합 기준에 따라 안료, 왁스, 야자유 등을 섞어서 분쇄과정을 거친 후 65~75℃의 온도에서 15~25분간 녹인 다음 형틀에 주입시킨 후 냉각시켜 봉상의 형태로 뽑아 낸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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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암행어사의 역할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초기의 암행어사는 명령받은 고을만 감찰할 뿐 지나가는 읍의 불법은 보고할 수 없었으며, 임무도 전통적인 감찰사목인 형정·부세불균·군기점검·도량형·금령준수 등 수령의 업무수행 상황, 수령·향리·토호의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은 숙종 때를 계기로 크게 바뀐다.1681년(숙종 7)에 암행어사의 임무를 새로 규정했는데, 어사가 고과 공정 등 관찰사의 업무수행까지 감찰하며, 지금까지 수령의 임무였던 문무의 인재나 효행이 탁월한 자, 환과고독이나 100세 이상인 자, 또는 패상자나 백성의 풍속을 어지럽히는 자 및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를 적발하여 보고하는 일을 어사가 직접 행하게 했다. 정조 때에는 어사가 지나가는 고을의 불법사도 염찰·보고하게 했으며, 부세관계 규정이 많아졌다. 이로써 어사는 수령비리 적발의 차원을 넘어서 읍폐 전반을 직접 처리하는 사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마패는 1마패에서 5마패까지 있는데, 암행어사에게는 보통 2마패를 주었다. 유척은 국초부터 중요한 감찰사목이었던 각 고을의 도량형과 형구의 규격 검사를 위해 지급하는 것으로 2개를 주었다. 처음에 비용은 암행어사가 자급했는데, 후기에는 정부에서 일정하게 지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행은 중앙 각사의 서리(書吏)나 역졸(驛卒)을 어사가 직접 골라 몇 명씩 대동하는 것이 관례였다. 군관을 차정해 가는 것은 금지했는데, 실제로는 우수한 무사의 필요성에서 이들을 선발해 가는 사례가 꽤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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