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가 통일을 하고 촉나라 오나라에서 유명한 집안들은 전부 몰락했나요?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아니고 서진에 의해 삼국을 통일한 것입니다. 서진 의해 통일된 이후 촉나라와 오나라의 유명 가문들은 모두 몰락한 것은 아니며, 대부분 서진에 등용되어 명망을 이어갔습니다. 촉나라의 유선은 안락공으로 봉해져 가문은 제후로 대우받으며, 뤄양에서 생활했습니다. 제갈양의 아들 제갈참은 전투중에서 사망했으나 다른 아들은 서진에 관직 생활을 했습니다. 관우와 장비의 아들 일부도 서진에서 관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나라 황족 손호는 귀명후에 봉해져 뤄양에서 생활하였으며, 가문도 제후로 대우받았습니다. 즉 진나라는 촉, 오나라 유명 가문들을 몰락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등용하여 자신의 정권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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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은 어떻게 프랑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것인가요?
'직지심체요절'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발행한 불교 수행서입니다. 즉 백운화상이 부처와 선승들의 말씀에서 깨달음의 요체를 뽑아 요약한 책입니다. 현재 하권 1책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중인데, 이는 1866년 프랑스와 수교로 부임한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 빅토로 콜랭 플랑스가 수집하여 유출되었습니다. 그는 고서적 수집광으로 1880년대 말에서 1890년대 초 사이 한국에서 여러 고서와 골동품을 수집하였습니다. 그런데, 1911년 플랑시가 사망한 후 그의 장서가 파리 경매에 출품되어 앙리 베베르가 구매했는데, 1950년 베베르도 사망하여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된 것입니다.프랑스가 직지심체요절의 반환을 거부한 이유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구매된 것이므로 반환 의무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귀중본으로 분류되어 단독 금고에 보관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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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수명은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요?
제도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제도의 수명도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명을 다해 없어지거나 변화됩니다. 예를 들어 급속한 사회 경제의 변화에 제도가 적응하지 못해 기능을 상실합니다. 또한 정권 교체나 정책 패러다임 변화가 기존 제도를 붕괴시킵니다. 또는 기존 제도로 이익을 얻은 집단은 제도 변화를 막으려 하지만 손해를 보는 집단은 강력한 반대로 제도 변화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수한 제도가 있더라도 더 좋은 기술이 발전하면 기존 제도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가치관의 변화도 기존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립니다. 따라서 제도의 지속적 개선을 위해 점검, 성과 지표 작성, 관련자 의견 수렴 등을 통해 평가해야 합니다. 또한 현장 조사를 통해 의견을 청취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제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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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는 실패한 미트리다테스도 존재하나요?
미트리다테스 6세는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려고 매일 소량을 독을 섭취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자살할 때는 독에 대한 내성으로 죽지 못해 칼로 자결했다고 합니다. 미트리다테스와 같은 방식으로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려고 했던 사례는 네로가 있습니다. 그는 미트라다테스 방식대로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중세, 근대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해독제를 섭취하는 관행이 있었으나 만성 중독으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현대 의학에서는 독에 대한 내성 기르는 행위를 위험한 행동으로 여깁니다. 오히려 만성 중독을 유발하여 장기적으로 건강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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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한민국인이 옛날에 말과 소통이 가능할까요?
현대 한국인과 삼국시대 사람들과 만나면 어느정도 소통이 가능할 것입니다. 기본 어휘는 현재와 거의 비슷할 것이며, 많은 부분에서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발음과 어휘 차이로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 초기는 성조 때문에 현대에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후기는 거의 의사소통에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즉, 성조와 어휘, 발음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뜻은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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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독립전쟁에서 인디언 원주민도 참전했던데 왜그런가요?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 영국편에서 참전했습니다. 영국은 식민지의 서부 확장을 제한했습니다. 1763년 인디언 보호 구역을 설정하여 애팔라치아 산맥 서쪽을 인디언의 땅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식민지인들은 7년 전쟁 승리로 얻은 비옥한 중서부 지역으로 진출을 원했습니다. 따라서 식민지인들의 계속된 인디언 땅 침탈로 빈번히 갈등이 발생했습니다.식민지인들의 서부 침략에 대응하여 인디언 6개 부족은 영국과 연합하여 식민지인들과 대결하였습니다. 하지만 식민지인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부족은 미국편을 선택하여 분열되었습니다. 결국 인디언 원주민들은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이유는 토지 보호와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승리 이후 인디인들은 큰 억압과 상실을 겪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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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은 왜 우리 힘만으로 얻은 게 아니라는 평가를 받나요?
물론 광복의 절대적인 계기는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독립운동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만약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관계없이 독립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제는 제국주의 국가 가운데 한 나라로 한국의 식민지 과정에서 열강의 지원을 받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더 많은 식민지 확장을 꿈꿨으며, 이는 태평양 전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한국의 식민지화에 동조했던 열강들이 이제는 일제와 적대적인 관계가 된 것입니다. 결국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국들은 일제의 필망을 예견하고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최초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고, 이를 1945년 포츠담 회담을 통해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독립은 우리 민족의 지속적인 독립 운동과 의지를 연합국이 인식하고, 결국 승리가 결합되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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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슬람 문명이 한때 과학과 철학의 중심이었던 사실을 왜 서양역사에서 많이 간과하고 있나요?
중세 이슬람은 과학, 철학 등이 발달했으며, 서양 문명 발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생략하거나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서양의 르네상스도 이슬람 세계에서 고대 그리스 지식의 보존과 전달하여 이루어졌는데 불구합니다. 만약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유럽 문명의 독자성이 훼손될 우려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십자군 전쟁으로 역사적 대립이 문화적 편견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또한 서구는 동양을 후진적으로 정체적 문명으로 묘사하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중세 이슬람 문명이 서양사에서 간과되는 이유는 서구 중심의 역사관, 종교적 편견, 그리고 교육적 왜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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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는 중국 일본 두 강대국.......
한국인들이 강대국이라서 지배할 수 있고, 약소국이라서 지배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해서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강대국도 약소국의 독립과 주권을 존종해야 합니다. 중국도 몽골, 만주족의 지배를 받았으며,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즉, 지배를 받은 것은 피지배국의 책임이 아니라 침략하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물론 약소국도 국력을 강화하여 침략을 방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인들이 중국,일본 등 강대국을 인정하면서도 자국의 역사를 통해 더이상 침략당하지 않기 위해 바른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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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말 그대로 중일전쟁 일본과 ..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본토를 침략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중국이 항복하지도 않았으며, 중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지만 전체를 지배한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중화민국 정부는 수도를 옮겨가며 항일 전선을 지속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1910년 경술국치로 한일합방으로 식민지화 되었습니다. 한국은 국가를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통치를 1945년까지 35년간 받았습니다.따라서 한국인들은 한국의 식민지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중국의 전쟁 경험을 왜곡하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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