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최고의 우방 사우디의 도움을 미국이 외면한 이유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위기에 닥쳤습니다. 후티반군은 홍해 요충지인바브엘만데브 해협과 페림섬, 모카항을 장악하고, 사우디 본토를 연쇄 타격했습니다. 심지어 수도 리야드까지 미사일, 드론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빈살만 왕세자가 9월 10일과 11일 두차례 트럼프에게 전화를 해 미군의 직접 후티 공습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 배경으로 드러난 것이 오만 무스카트 미 대사관에서의 비밀 회동입니다. 미국 당국자들이 후티 지도부와 만나, 후티가 "미국 선박을 공격하지 않겠다" 고 약속하고 미국은 사우디를 군사적으로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군이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며, 중간 선거의 부담때문입니다. 중국사우디는 미국의 지원 대안으로 프랑스·영국·파키스탄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모두 미온적이었습니다. 결국 사우디는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중국이 이란에 후티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사우디가 최근 후티에 사용한 탄도미사일이 중국제로 알려진 점도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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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사학계는 왜 붕당정치를 이전과 다르게 재평가하고 있나요?
붕당 정치는 본래 공론을 바탕으로 한 여론 정치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공존 원칙이 붕괴되고, 환국 등으로 변질되어 일당 독재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정적 시각은 구한말 이건창의 <당의통략>을 통해 붕당을 부정적으로 정리했고, 일본 식민사학을 통해 당쟁 망국론이 체계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붕당 정치에 대한 평가의 출발은 1970~1980년대였습니다. 이태진 등 국사학자들이 식민사관 극복의 일환으로 조선 정치사를 재조명하면서 당쟁이라는 부정적 용어 대신 긍정적 개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재평가의 근거로는 공론 정치, 균형 유지, 정당정치의 원형이라는 것이며, 오히려 현종, 숙종, 영정조대가 조선의 두번째 문화 부흥기였다는 점도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최근 민주화의 영향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로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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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테크읭경기는 언제부터 생겼나요?
아시아게임에서 테크볼는 2026년 아이치-나고야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되었습니다. 테크볼은 2014년 헝가리에서 전직 프로 축구선수 보르샤니 가보르와 컴퓨터 공학자 후사르 빅토르 등이 만든 신생 종목입니다. 탁구대를 아치형으로 구부려 축구공을 튀게 한 것이 핵심 아이디어로, "축구와 탁구의 결합", 또는 "발로 하는 탁구"로 불립니다. 손과 팔을 제외한 머리·가슴·허벅지·발로 공을 넘깁니다. 2021년 아시안 비치 게임, 2023년 유러피언 게임에 이어 2026년 이번 아시아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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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어떻게 나폴레옹의 대군을 초토화전술로 물리칠 수 있었나요?
나폴레옹의 전범은 적 주력을 조기에 격파해 강화를 받아내는 것이었으며, 식량은 현지 조달이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정확히 그와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결전을 피해 동쪽으로 후퇴하였으며, 결전을 피하고 후퇴하는 과정에서 청야 작전으로 일관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60만대군은 병력과 말을 먹일 식량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말의 식량 부족으로 말에 의존한 수송, 기병, 포병이 굶어 죽음녀서 기병과 포병이 사실상 전멸했습니다. 또한 보급선이 지나치게 연장되어 신속하게 보급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반면 러시아 군대는 온전히 유지한 채 겨울 동장군에 위기에 처한 프랑스에 일격을 가했습니다. 이 때문에 60만 프랑스 병사 중 귀환한 병사는 10만도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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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몽골식 풍습(변발, 호복 등)은 왜 지배층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확산됐나요?
원간섭기 고려는 부마국으로 고려왕이 원 활실의 사위에 해당됩니다. 이 체제는 원과 밀접한 친원 세력인 권문세족이 새로운 지배층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원과의 연결은 곧 특권이고, 출세의 통로였습니다. 따라서 몽골식 머리와 옷은 원에 대한 충성과 소속감을 보여주는 표시로 기능했습니다. 실제로 몽골군에 투항한 고려인들은 자발적으로 몽골식 머리와 옷을 갖춰 입어 소속감을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충렬왕은 원의 지원을 받아 왕권을 강화하려했습니다. 그래서 1278년 관리들에게 개체 변발과 호복으로 바꾸라는 "의관개변령"을 반포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자발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고려인들은 강제로 개체변발을 당했고, 관리들에게는 의관개변령의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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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 간 입장 차이는 대외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조선 시대 붕당 갈등이 대외 정책으로 번진 이유는 명분, 또는 의리가 곧 권력의 정당성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대외 질서는 사대교린이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명에 대한 재조지은의 깊이가 컸습니다. 즉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는 것은 유교적 도덕 관념에 어긋나는 행위로 인식되었습니다. 광해군은 당시 명과 후금 사이에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중립외교를 했는데, 이는 서인의 입장에서는 명을 배신하는 행위로 규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623년 이를 구실로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축출했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효종 때 북벌론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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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식에 대한 부모님들의 교육열과 비견될만한 국가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매우 높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적 전통에 따라 교육이 곧 신분 상승이라는 인식을 만들면서 교육열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수능에서 고득점을 맞기 위해 저학년부터 69%에 사교육에 참여합니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싱가포르도 PSLE를 위해 66%, 일본도 대학 입시를 위해 60%에 이릅니다. 남아시아의 인도도 'IIT'라는 입시 제도가 있어 높은 사교육에 의존합니다. 스리랑카, 네팔, 캄보디아, 미얀마 등도 사교육이 활발합니다. 학계는 카자흐스탄에서 사교육이 최근 급격히 번성했다고 기록합니다. 고려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을 통해 성공한 것은, 이주민이 가진 "교육 외에는 상승 경로가 없다"는 절박함이 한국적 교육열과 같은 동력으로 작동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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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가긱전에 뭘 알고 가면 좋울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국립 중앙 박물관은 우리나라 최대 박물관으로 전시물도 다양하고 많습니다. 따라서 방문전에 어느 정도 사전에 알고 가면 도움이 됩니다. 우선 현재 열리는 특별 전시를 알면 더욱 좋습니다. 물론 상설 전시관은 무료이니 꼭 보시길 권장합니다. 특히 1층에 경찬사지 10층 석탑, 사유의 방에서 반가사유상 2점을 반드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추천 동선은 2시간이라면 1층 구석기 신석기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지나 2층 사유의 방, 그리고 관심 기획전을 보면 좋습니다. 반나절이면 야외 정원과 어린이 박물관도 좋습니다. 그리고 혼잡을 피하려면 수, 토요일 야간 개장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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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춤과 은율탈춤이랑 해서탈춤에 대하여
해서 탈춤은 주로 사월초파일과 단오에 연희합니다. 그리고 봉산탈춤은 원래 초파일이었고, 조선말 이후 단오로 옮겨갔습니다. 단오의 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원형은 석가탄신일 연희였습니다. 또 단오 이외에도 원님의 생일이나 부임일, 사신 영접, 탈춤대회 때도 연희됐습니다. 즉 세시(단오·초파일)가 중심이되, 필요에 따라 수시로 공연되는 성격이었습니다.봉산탈춤은 서쪽 평야, 은율탈춤은 동남쪽 평야, 그리고 강령 탈춤은 해안 지대를 대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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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시초는 누구였을까요? 궁금합니다
파시즘을 창시한 인물은 무솔리니입니다. 무솔리니는 1919년 파시 디 콤바티멘토를 창시했고, 1921년 국가파시스트당을 만들었으며 1922년 로마 진군을 통해 집권했습니다. 파시즘의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의 '파쇼'(묶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무솔리니 이전에 시인이자 전쟁 영웅이었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있었습니다. '카르나로 섭정'을 세워 스스로 '두체(Duce)' 를 칭했습니다. 파시즘의 상징적 의례인 검은 셔츠, 로마식 경례, 발코니 연설, 정렬 행진, 청년 혈육 미화 등은 모두 피오메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외에도 이념의 뿌리는 조르주 소렐(프랑스), 샤를 모라스(프랑스), 조반니 젠틸리(이탈리아)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무솔리니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파시즘의 시초"는 이름과 국가를 만든 무솔리니, 의례를 만든 단눈치오, 사상을 놓은 소렐·모라스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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