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일제의 국권 피탈이라 봅니다. 일제 강점기는 근대화로 가는 큰 변혁에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식민 통치로 민족 문화는 물론이고 민족 정신에 큰 상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친일 잔재는 현재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과제입니다. 또한 일제 강점기는 분단을 씨앗이 되었습니다. 만약 국권 피탈이 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분단도 없었을 것입니다. 분단은 한국 전쟁의 배경이 되었으며, 현재도 그 고통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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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사고는 어디어디 있나요??
본래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는 전국 5곳인 춘추관, 강화, 전주, 성주, 충주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본을 제외하고 소실되었습니다. 임란 후 전주 사고본을 필사하여 춘추관, 정족산, 적상산, 태박산, 오대산에 사고를 설치하여 보관하였습니다. 그리고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사고는 불타 소실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족산사고는 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되었다가 광복 이후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었고, 현재는 일부가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태백산 사고는 1985년 국가기록원에 보관하고 있으며, 오대산 사고는 일제 강점기 일본에 유출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상당수 소실되고 일부 환수되어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상산 사고는 한국 전쟁 당시 북한으로 이동하여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보관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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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은 왜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데 100년 가까이 걸렸나요?
조선시대 조세제도는 전세, 공납, 역으로 구분하여 시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지나면서 모순과 해이해졌습니다. 특히 공납은 상인과 아전들의 농간이 많아 방납의 폐단으로 백성들의 불만이 높았습니다.따라서 광해군은 가호 단위를 걷던 토산품을 토지 결수에 따라 쌀, 옷감, 동전 등으로 내는 제도로 개선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비록 경기도에서만 시행되었지만 토지 단위로 하면서 농민들의 부담은 줄어들었으나 지주들의 반발이 커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주들의 반발로 숙종 때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되는데 무려 100년이나 걸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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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전장에서 장수끼리 일기토가 나왔나요?
실제로 일기토는 있었지만 삼국지연의처럼 극적으로 벌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정사나 고대 기록에도 장수끼리 일기토 사례는 보이지만 대부분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여포와 곽사, 손책과 태사자, 관우와 안량, 방덕과 곽원 등이 일키토 대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삼국지연의는 소설이기 때문에 영웅들을 돋보이기 위해 일기토를 돋보이게 묘사한 것입니다. 또한 이는 전장의 혼전 속에서 장수끼리 우연히 맞붙거나 적장만 노린 공격에 가깝습니다.실제 전쟁에서는 보통 군대 전체의 배치, 기병, 보병 운용, 보급, 지형이 훨씬 중요합니다. 따라서 장수들끼리 1:1로 붙어서 전쟁의 승패를 가리는다는 것을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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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은 왜 별무반이라는 특수부대를 만들었나요?
고려는 초기 거란, 중기 여진, 후기 몽골, 말기에는 홍건적과 왜구 등의 침입 과정을 거쳤습니다. 본래 여진은 고려 국경 이북 지역에 부족 단위로 거주하며, 교역과 사대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여진이 세력 규모를 키워 기병으로 침략하면 대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1107년 윤관이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건의하여 별무반을 조직한 것입니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그리고 승병 부대인 항마군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윤관은 여진족의 침략을 예방하기 위해 그들의 근거지를 공격하여 동북 9성을 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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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에도 신문고와 유사한 수단이 있었나요?
신문고는 처음 조선시대 태종이 한양에 설치한 민원 통로였습니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지방 사람들은 활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원칙적으로 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장치였지만 실제로는 지방 수령이나 관찰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모, 해결이 안되면 상급 관청으로 올라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지방 사람들은 신문고 자체는 없었지만 지방 관어에 직접 소청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임금의 행차나 궁궐 앞에서 징, 괭과리 등을 쳐 호소하는 격쟁이 있었습니다. 또한 글을 아는 사람들은 상언을 통해 억울함을 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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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와 정도전이 대립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몽주와 정도전은 성리학을 학문적 배경으로 고려를 개혁하려는 신진 사대였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개혁의 방법을 놓고 대립하게 됩니다. 그들은 고려를 끝까지 유지하고 개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왕조를 세워 개혁을 할 것인가를 놓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결국 정몽주는 고려 안에서 개혁을 추진하자고 하였으나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개혁을 추진하자고 한 것입니다. 정몽주는 충신으로서 기존 왕조의 정당성을 중시했지만, 정도전은 백성을 위한 새 질서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개혁의 정도와 방법, 그리고 왕조 자체를 유지할지 여부에서 갈라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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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국조서가 갖는 의의가 무엇인가요?
교육 입국 조서는 1895년 2차 갑오개혁 추진 과정에서 발표한 선언입니다. 고종은 교육 입국 조서를 통해 덕, 체, 지 교육을 강조하고 전통적 경전 중심에서 벗어나 근대식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특히 이 조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교육이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첫 조치였습니다. 이후 근대 학제를 정비하고, 학교 설립, 인재 양성의 방향을 제시한 문서입니다. 즉, 교육 입국 조서는 조선이 근대 국가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표한 근대 교육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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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구급방과 향약집성방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두 의서 모두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 약초를 재료로 치료하고한 전통 의학서입니다. 하지만 향약구급방은 고려, 향약집성방은 조선시대에 초기(세종)에 편찬한 의학서입니다. 또한 향약구급방은 급한 병을 빨리 치료하려는 책이고, 향약집성방은 보다 여러 짋여을 체계적으로 모은 종합 백과 사전과 같은 의서입니다. 한마디로, 향약구급방은 초기의 응급 의서, 향약집성방은 이를 바탕으로 발전한 더 큰 규모의 종합 의서라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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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발칸 전쟁에서 불가리아가 발칸 여러나라와 적대적인 관계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발칸 전쟁은 발칸 지역의 여러 민족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2차 발칸 전쟁에서 불가리아가 여러 발칸 국가와 적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차 발컨 전쟁 후 마케도니아 분할을 놓고 불가리아가 크게 불만을 가져서입니다.불가리아가 더 많은 영토를 가져야 한다고 여겼으나 세르비아와 그리스가 반발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먼저 불가리가가 먼저 두 나라를 공격을 하였으며, 곧바로 루마니아와 오스만제국까지 개입하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불가리아가 패배하고, 마케도니아 대부분은 세르비아, 그리스에게 넘어가고, 도브루자는 루마니이, 동트라키아는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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