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의 라스푸틴에 대해서 궁금해요.
라스푸틴은 사실과 전설이 뒤섞인 인물입니다. 그는 가난한 농민 출신의 신비주의자, 치유사로 알려졌는데,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유일한 아들이며, 황태자인 알렉세의 혈우병을 완화시키면서 황실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었습니다.그 뒤 라스푸틴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라 황실의 조언자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특히 1차 대전 시기에 황후가 국정에 깊이 관여하면서 그의 존재감이 더욱 커져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하지만 귀족들은 그가 황후를 좌우하고 전쟁과 내정에까지 개입하여 국정을 혼탁하게 한다고 봤습니다. 그 이유때문에 암살자들에 의해 제거되었습니다. 제거 과정에서 독살을 시도하고, 총격을 가했는데도 일어났다는 멀쩡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는 독, 총상, 구타에 의해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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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도시들은 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나요?
11세기 이후 중세 유럽은 나름의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농업 기술의 발달로 생산성이 증대했습니다. 이에 교통의 요지나 영주의 성, 교회 주변에 도시가 형성되고 상인과 수공업자들 중심의 시민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도시는 영주에 특허장을 받아 자치권을 행사하면서 독자적으로 성장했습니다.하지만 외부의 침입과 약탈을 막기 위해 도시민들은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고 출입을 관리하고 들어오는 상인에게 통행세, 관세를 부과하였습니다. 따라서 시민을 뜻하는 부르주아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bourg) 안의 주민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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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사실보다 신념을 더 믿을 때가 있을까요?
사람이 사실보다 신념을 더 믿는 경우는 흔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는 확증편향입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과 자신과 맞는 것은 더 잘 수용합니다. 그리고 반대되는 정보는 덜 신뢰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큽니다.그리고 인지부조화입니다. 자신이 오래 동안 믿어온 것이 틀렸다는 증거를 마주하면 대부분 심리적으로 불편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념을 수정하기보다는 예외나 왜곡된 정보로 처리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그래서 사람은 사실을 바꾸기보다 해석을 바꾸려 합니다. 여기에 가족, 정치, 종교처럼 소속 집단의 영향까지 더해지면 신념은 더욱 강해집니다. 결국 신념은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관계를 지키려는 심리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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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정에서의 사투리 사용에 관하여
조선에는 현대적 의미의 국가 표준어 제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궁중과 관료층에서는 서울 중심의 말, 한문, 그리고 공문서 규범이 사실상 기준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회의나 구두 대화에서 각자 출신지 말시가 섞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서울의 조정에서 지방 말씨가 너무 강하면 품위가 떨어진다고 여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기록상으로 사투리나 속어는 '토리의 말' 표현으로 부르기도 하며,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다른 시대와 나라의 정부도 대체로 공식 문서와 의회, 법정 궁정에서 표준화된 언어를 썼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조선 조정은 사투리가 존재했으나 공적 장면에서는 한문과 서울식 격식어를 우위를 둔 사회였을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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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5적에 대하여 을사늑약과 관련이 있는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할 당시의 대신은 9명이었습니다. 이른바 을사5적으로 강조되는 인물로는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정대신 한규설은 끝까지 반대하여 회의자리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탁지부 대신 민영기와 법부대신 이항영은 회의 당시에서는 반대했지만 나중에 친일로 변절했습니다. 그리고 궁내부 대신 이재극은 회의 참석, 서명 중심의 을사늑약 체결 핵심 5인에 들어가지 않아 보통 을사오적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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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때 과거제가 폐지되었는데 어떠한 배경으로 폐지 되었나요?
과거제는 고려 광종 때 호족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도입되었습다. 또한 과거는 유교적 인재를 양성하여 관료 제도 형성에도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제는 근대 국가에 맞는 선발 방식이 아니었다고 판단하여 1894년 갑오개혁으로 페지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유교 경전의 암송은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으며, 신식 학문과 기술, 인재 선발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한 개혁 세력은 근대적 관리 임용 제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과거제는 근대화와 신식 인재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갑오개혁을 계기로 폐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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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에 대한 불교, 유교 명언 알려주세요
꾸준함과 정성에 관한 명언으로는 성위능화(誠爲能化)가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남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작은 일도 대충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면 결국 큰 변화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궁리진성(窮理盡性)는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고, 자기 본성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성급하게 결과만 보지 말고, 끝까지 파고들고 지속하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불교측에서도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게으르지 말고 꾸준히 수행하라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일체개고 제행무상'이라는 가르침은 '모든 것은 변하고 집착하지 말라' 가르침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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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서 노비나 평민이 과거에 급제한 경우의 사례가 있었나요?
조선시대 노비는 과거 응시 자격 자체가 없습니다. 하지만 평민은 과거 응시에 제한이 없어 아주 드물게 급제한 사례가 있습니다. 조선 초기 평민 출신이 문과 급제자의 40~50%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비는 천민으로 과거 응시 자격 조차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응시했다가 발각되어 처벌받은 사례는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 이만강은 본래 노비였으나 이름을 바꾸어 과거에 급제했으나 들통나 처벌받았습니다. 그리고 반석평은 천한 신분이나 주인의 도움으로 면천하여 양반 가문이 들어가 문과에 응시하여 형조판서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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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역사와 신화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이야기인가요?
신화는 주로 신, 세계의 탄생, 인간과 자연의 기원처럼 아주 근원적인 것을 다룹니다. 그리고 전설은 실제 인물이나 장소를 바탕으로 있었던 일처럼 믿어지는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그리고 민담은 옛날부터 민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입니다. 민담은 사실 여부보다 재미, 교훈, 해학이 중심입니다. 전설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바탕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과장, 지역의 자부심이 섞여서 역사와 상상이 합쳐진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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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이라는 신분은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 아니면 조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성리학적 지배 질서를 중시한 나라입니다. 특히 정통성의 원리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신분 질서도 양반 중심이었습니다. 본래 양반은 문, 무 양반 관직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16세기 이후 점차 가족 단위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양반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인과 서얼들의 신분 상승을 억제하였습니다.양반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양반 가문이어야 하며, 학문과 관직 경려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지주,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야 했습니다.하지만 양난 이후 양반 중심의 지배 질서도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양반층의 분화로 권반, 향반 이외의 향반은 실질적 영향력을 잃고 농민과 같은 처지에 놓였습니다. 반면 하층민은 지속적인 신분 상승을 통해 양반층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즉, 조선 후기에는 실권과 경제력 없는 구향, 반면 경제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신향이 등장하여 향촌의 지배권을 놓고 충돌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조선 후기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는 약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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