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참사 사건을 알려주세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참사로 대표적 사건을 사망자 수 기준으로 한다면 1995년 6월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단연 최대입니다. 불법 증축 구조 변경과 부실공사, 안점 점검 소홀 등으로 붕괴되어 502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다음은 1953년 8월 부산 앞바다에서 창경호 침몰 사건으로 과적과 악천후로 330명이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1970년 남영호 침몰 사건은 여수 앞바다에서 326명을 사망케하였습니다. 그리고 네번째로는 2014년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으로 299명, 1993년에 있었던 서해훼리호 사건은 292명의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974년 YTL 30호 침몰 사건, 2022년 이태원 참사, 2024년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화재 사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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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하다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였고 원래 어떤 상태나 행동을 가리키던 말이었는지
'찌질하다'라는 표현은 '지질하다'에서 된소리로 변형된 속어입니다. '지질하다'는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라는 의미의 형용사로 예부터 쓰이던 순우리말 계열의 표현입니다. 1990년말 ~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커뮤니티와 청소년 속어로 급속히 퍼졌습니다. 즉,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사람, 또는 행동을 이르는 말인데, 현재는 못나고 어이없고 비겁해 보이는 행동 전반을 비하할 때 주로 쓰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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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을 신기 시작한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하이힐은 우선 10세기 경 페르시아의 기병대가 말 위에서 활을 쏘거나 전투할 때 발이 등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로 뒤꿈치에 굽을 단 신발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이힐은 실전에서 매우 효율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16~17세기 페르시아 사절단이 유럽을 방문하면서 유럽 귀족 남성들 사이에서 퍼진 것입니다. 이후 루이 14세가 권위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굽 높은 구두를 애용하면서 궁정 패션으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두번째서 설은 중세 유럽의 거리에 오물이 많았는데, 이를 밟지 않으려고 굽을 높인 신발을 신은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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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다는 표현에서 '터무니'가 원래 어떤 뜻을 가지고 있었던 단어인지
'터무니없다'에서 '터무니'는 '터'와 '무니' 결합된 단어입니다 터는 집이나 건축을 세웠던 자리를 말하며, 무니는 무늬를 말하는 것으로 자취, 흔적을 말합니다. 즉 건물의 주춧돌, 기둥과 같은 자리와 같은 흔적을 말합니다.집이 있던 집터에 주춧돌이나 기둥 자리와 같은 흔적 있어야 하는데, 그 마저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터를 잡은 흔적이 없다. 즉 근거나 정황이 없는 상황, 허황하여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따라서 터무니없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댈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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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주 쓰는 '바람맞다'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바람맞다'는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헛걸음하다는 의미이지만 어원은 '중풍'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자어 중풍(中風)은 ‘맞을 중(中)’과 ‘바람 풍(風)’으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람을 맞다”가 되는 것입니다. 본래 뇌졸중에 걸리면 몸이 마비되는 비참한 상태가 되는데, 이를 약속을 깼을 때 허탈한 상황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즉, 병에 걸리다는 뜻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약속 장소에서 상대방이 안나타나 찬 바람만 맞고 돌아가는 상황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오늘날의 관용구로 정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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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타왕조는 왜 인도 고전문화의 황금기로 평가받나요?
굽타 왕조는 인도 고전 문화의 황금기라 합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안정적이었습니다. 굽타 왕조는 찬드라굽타 1세 건국 이후 북인도 대부분을 장악하고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안정된 통치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농업 확대와 무역이 번성했습니다. 이는 사원 건립, 학자 지원, 문학, 미술 제작 등 문화 투자로 이어진 것입니다. 무역로를 통해 외부 지식과 기술 교류도 활발하여 학문 발전에 자극이 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비슈누 신화 등을 통해 왕권 이데올로기로 합리하여 힌두교를 장려하고, 산스크리트 문학과 예술이 왕실 보호를 받았습니다. 특히 산스크리트어가 학문과 예술의 표준어로 자리잡으면서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등의 작품과 칼리다사 같은 시인이 등장하는 등 문학이 절정을 맞아습니다. 나아가 수학, 천문학 등 자연과학도 발달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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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금주령에 대해서 궁금한점 질문드립니다.
금주령은 흉년, 기근 등으로 곡식이 귀해진 상황에서 술 빚는데 쓰이는 쌀과 곡식을 아껴 백성의 굶주림을 줄이려는 정책입니다.영조는 52년 재위중 50년 가까이 금주령을 내렸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적으로 영조 재위시기 경신 대기근, 을병대기근 등 대기근 경험이 있어 식량 확보가 매우 중요한 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조는 술을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광약'으로 규정할 정도로 사대부의 사치와 유흥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영조는 국가 제사에서 술을 쓰면 백성에게는 금주하도록 하는 것이 유교적 통치 이념이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에서도 술 사용을 금지해 금주령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실제로 영조 32년 금주령에서는 모든 제사·연향·호궤·농주 등에서 일체 술을 금지하고 오직 예주만 쓰게 했으며, 위반자는 유배·노비화·과거 자격 박탈 등 엄벌에 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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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반군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사우디를 공격한건가요?
후티 반군은 예멘 북부 사다 지역을 거점으로 한 시아파 분파입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예멘 정정이 혼란에 빠지자 세력을 키워 2014년 수도 사나를 장악하였습니다. 그리고 2015년 사우디 주도 아랍연합군이 개입하면서 예멘 내전으로 본격화되었습니다. 사우디는 에멘 정부를 지지하며 후티 반군 소탕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후티 반군도 보복과 협상 주도권 확보를 위해 사우디 본토 공항, 석유 시설 등을 타격해 왔습니다. 또한 홍해, 바브알만데브 봉쇄 위협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란과 미국의 충돌은 예멘 전쟁과는 별개의 호르무즈 해협·중동 해상 봉쇄 대결에서 비롯됩니다. 이란 혁명 수비대가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 함정에 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군은 유조선에는 유조선 원칙으로 이란 정부 유조선을 타격하며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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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는 왜 후대에 부정적 이미지로 더 많이 기억되나요?
붕당 정치는 본래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공론 정치를 통해 유교적 이상 정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후대로 갈 수록 정치적으로 제한된 관지과 경제적 이권 다툼이 다분합니다. 즉 시간이 갈수록 인사권, 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심해지고 당파 간 숙청과 보복이 반복되면서 부정적 결과가 커졌습니다. 당시 실록과 문집에도 당폐, 당화, 당쟁을 비판하는 표현이 자주 나타날 만큼 동시대인도 그 폐해를 강하게 인식했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을 영향으로 당파성의 근거가 되어 광복 이후에도 부정적 인식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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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가장 널리 퍼진 종교들에는 공통된 부분이 잇는지 궁금해여?
역사상 세계적 종교는 우선 인간을 넘어서는 신성한 존재, 또는 궁극적 원리를 상정하고, 인간이 그것과 관계를 맺거나 깨달음에 이르러 더 나은 삶을 살 있다고 봅니다. 또한 삶의 의미, 고통, 죽음 이후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는 희망의 서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한 선한 행동과 자기 절제,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 절도, 거짓, 간음 금지, 사랑, 정의 등 핵심 도덕률이 여러 종교에서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기도, 명상, 수행 등을 통한 내면 성찰과 공동체를 형성하여 사회적 연대와 정체성을 만들어냅니다. 비록 신의 모습은 다르지만 신성한 것에 대한 믿음, 의례와 도덕, 공동체 형성과 의미 부여라는 구조는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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