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양인들은 그들의 문화의 뿌리가 그리스라고 하나요?
서양 유럽에서는 그리스 문화를 문화의 뿌리로 여깁니다. 서양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치, 가치, 철학 등을 그리스에서 체계하였으며, 이를 로마가 계승하였습니다. 로마 문화는 중세 유럽 문화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는 현재 서구 문화로 계승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문화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같은 주변 동방 문명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다만 서양인들이 스스로 설명할 때 상징적으로 내세운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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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 법전은 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을 담았나요?
함무라비 법전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동해보복의 원칙입니다. 당시에는 씨족, 부족 단위 사회였기 때문에 법으로 규정한 것보다 보복의 한도가 넘어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법으로 과잉 보복을 막고 처벌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입니다. 즉, 보복의 한도를 정해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도입니다.하지만 동해보복이라고 하지만 신분제 사회의 불평등한 질서를 반영했습니다. 즉 신분에 따라 처벌과 배상의 정도가 달라졌으며, 그 만큼 강한 자의 폭력을 제어하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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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미국 보고서에 "독도는 한국 땅" 명시가 확인됐는데, 이런 증거 외교에 어떻게 써야 할까요?
1948년 미군 기밀 문서의 핵심은 독도가 한국의 일부로 이미 분명히 확립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서는 1948년 6월 8일 미 공군의 오폭 사건을 조사하면서 독도가 일본의 섬으로 오인된 채 훈련이 진행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즉 단순히 지리 메모가 아니라 미군 내부가 당시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으로 현장 인식이 따라 가지 못해 일어난 사고라는 것입니다.이 문서 이전인 1946년 SCAPIN 677 지령과 1951년 관련 서신 처럼 흐름을 연결하는 문서로 미국의 일관된 독도에 대한 일관된 한국령 인식 논리입니다.이 문서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보강하지만, 단독으로 모든 분쟁을 끝내는 결정타는 아닙니다. 다만 “해방 직후 미국조차 독도를 한국 영토로 봤다”는 점을 보여줘, 외교·연구·홍보에서 상당히 유용한 카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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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는 어떻게 말로만 거란의 침입을 막고 강동 6주까지 얻었나요?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거란이 고려가 신라 계승한 나라라고 하였으나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하였다고 반빅하였습니다. 또한 여진이 거란과 통교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어 고구려의 옛 땅을 돌려주면 고려가 거란과 통교할 수 있다고 주장였습니다.당시 거란(요)는 고려와 직접적인 전쟁보다는 고려의 친송 정책을 막고 송과 대결에서 후방의 안정을 노린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희의 담판에 의해 거란은 침략을 중단하고 철수하였으며, 이 덕분에 고려는 강동6주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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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화권에서는 왜 '한' 보다 '조선'을 더 많이 사용하나요
중국과 일본에서는 과거 한반도를 오랫동안 조선반도로 불러왔습니다. 이는 과거 조선 국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한제국 이후 한국, 대한 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는 자연스럽게 한반도, 한국어, 한민족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조선'이라는 국호 사용으로 두체제 병립으로 조선족 표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런 호칭의 시정을 중국, 일본에 요구하기도 했지만 국가간 습관이라 쉽게 바뀌지 않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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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한글 현판 함께 걸지 국민 토론, 문화유산 원형 보존이 먼저일까요?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함께 걸어 한글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문화유산은 있는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다만 그 기존 현판을 바꾸지 않고, 안내문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봅니다. 즉, 문화 유산은 현재의 취향보다 당시의 모습과 고증이 우선입니다. 광화문 복원은 오랫동안 경복궁 복원 사업의 일부로 진행되어 왔으며, 현판 변경은 복원 원칙을 흔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원형은 지키면서 한글로된 안내문 형식으로 보완하는 것이 옳은 선택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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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이 1908살에 죽엇다는 게 사실인가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이 1908세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사달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식으로 전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적 상징입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기원과 위상을 표현한 전승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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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박가분이라고 해서 화장을 하는 분이 있었다는데 그게 뭔가요??
박가분은 파우더, 분가루와 비슷한 얼굴 화장품입니다. 박씨 집안에서 만든 화장품이라 박가분이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가루가 아니라 얼굴을 희게 보이게 하는 백분 화장품입니다. 당시에는 얼굴을 하얗게 보이는 것이 인기였습니다. 박가분은 우리나라 초기 상업적 화장품이며, 얼굴에 바르는 파우더류 화장품으로 아주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납성분 문제로 납중독 논란이 생기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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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평가받나요?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들의 부흥운동을 계속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발해가 건국된 것입니다. 우선 발해를 건국한 세력은 고구려 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와 이어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 보낸 국서에도 고구려를 '고려'라 부르며, 옛땅을 회복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발해의 무덤 형식, 기와, 불상, 석등 등 문화는 고구려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발해는 고구려의 혈통을 계승한 유민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고, 정치와 문화적 정통성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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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제국과 동양에서 제국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서양에서 제국과 동양에서 제국은 둘다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국가로 동일합니다. 하지만 동양 제국은 보통 황제 1인 아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로 이해는 경우가 많으나 서양의 제국은 로마 제국처럼 여러 민족과 영토를 묶는 지배 체제입니다. 그리고 동양은 황제한 군주가 아니라 천하의 질서를 대표하는 존재이고, 주변 국가들은 조공, 책봉 관계 질서로 여깁니다. 그런데 서양의 제국은 정복지와 속주를 묶는 실용적 통치를 합니다. 황제는 세계 질서의 중심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영토와 군대를 지휘하는 최상위 통치자인 것입니다. 즉, 동양식 제국은 하늘의 명을 받은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 서양의 제국은 정복에 의한 다민족 식민 지배 국가를 말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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