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전대통령의 업적과 과오를구분해줘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으로는 경제적 측면에서 평가입니다. 우선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습니다. 또한 1960년대 후반 경부고속국도를 건설하여 산업, 물류, 도시간 교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추진으로 농촌의 근대화에 이바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1961년 군사정변을 일으켰으며, 본래의 군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고 하였지만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또한 1969년 3선개헌과 1072년 유신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독재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인권과 언론, 학생 운동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행위에 대한 정당성에 대서하는 일부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권, 민주주의를 억제하는 행위는 옳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한국 사회에 오래 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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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뜻풀이또는속담이나 옛날이야기
고사성어는 삶의 교훈을 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온고지신'은 '옛 것을 돌아보며 새 것을 깨우친다'라는 말로 과거의 경험, 지혜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데 이로운 것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새옹지마는 재난이 될 상황이라도 나중에 보면 오히려 좋은 일도 된다는 것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할 때 사용합니다. 그외에도 고사성어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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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신밟기놀이는 언제 하는거고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지신밟기는 새해 정월 초사흘날 부터 대보름 사이에 집집, 마을을 돌며 행하는 풍습입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섣달 그믐, 새해에 사악을 쫒는 나례 의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땅, 집을 관장하는 지신을 발로 밟거나 풍물, 사물로 달래서 집안에 불러오는 재앙, 병, 흉을 물리치고, 풍년과 건강, 평안을 기원하는 놀이입니다. 주로 마을 당산, 우물, 마당, 방마다, 부엌을 두르 돌며 지신을 달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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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나 약간 좀 옛날 고문방식 알려주세요
과거에는 다양하고 고통스러운 고문이 많았습니다. 중세 시대 고문 사례 중에는 '고문대'라는 것은 사람을 양 끝에 묶고 손발을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잡아 당겨 고통을 주는 곳으로 뼈가 탈구되고, 관절이 뜯기게합니다. 중세 유럽의 종교 재판에서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요람'은 좁고 뾰족한 피라미드 모양의 의자에 사람을 내려 앉히는 고문으로 항문, 성기 같은 부위가 날카로운 끝에 찢기게 하여 고통을 주는 방식입니다. '청동황소'는 안이 빈 금속 황소 속에 사람을 넣고 아래에 불을 지펴는 고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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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만한 아우없다는 말이 잇던데여??
"형만한 아우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형이 먼저 태어나 인생 경험이나 노하우가 많으니 동생이 형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즉, 형이 아우보다 100% 우수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속담은 장유유서와 같은 형제 서열을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형제 사이에 형이 우위에 서야 한다는 규범이 있기에 형이 아우보다 낫다는 속담이 굳어진 셈입니다. 또한 형이 아우를 돌보고, 가르치고, 잘 이끌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형의 책임감을 강조하려는 유교적, 가족적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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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다툼이 없는 인간 사회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나요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나 다툼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습니다. 역사는 전쟁의 기록이 많습니다. 국가, 민족, 종교, 지역간 갈등으로 전쟁은 계속되었으며, 역사에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본능상 갈등과 전쟁이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전쟁은 지도자의 이기심, 자원 및 영토, 경제적 이익 다툼 등으로 일어납니다. 전쟁이 없는 사회는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희망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전쟁이 한번도 없는 상태는 역사상 없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생존을 위해 전쟁을 방지하거나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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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에는 한글이 발명이 안됐었는데 어떻게 말했나요?
훈민정음이 발명하기 전에도 말(언어)은 현재처럼 우리민족의 언어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즉, 언어는 있었지만 문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서 표기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자와 우리 언어가 다르기에 한자를 빌어 향찰, 이두, 구결과 같이 변형하여 문자로 기록했을 뿐입니다. 훈민정음은 1446년 우리말(언어)를 표기 위해 세종대왕이 발명한 문자입니다.즉, 고려, 조선시대에도 중국어를 말을 하지 않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와 비슷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다만 글을 슬때 한자 또는 한자를 변형하여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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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1960년대에는 무근 머리가 유행이었나요?
1960년대 서양에서 여성은 부팡 스타일, 플립스타일, 픽시컷 등이 유행했습니다. 부팡 스타일은 머리 윗부분을 높게 부풀리고 둥글게 만든 스타일이며, 플립 스타일은 중간 길이 또는 짧은 보브컷으로 끝을 밖으로 말아올린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픽스 컷은 아주 짧은 남성적 숏컷입니다. 그리고 남성들은 비틀즈 맴버 처럼 짧은 앞머리, 양옆과 뒤통수는 짧게, 위쪽은 살짝 길게 내린 머리 모양이 유행했습니다. 그외에도 클래식 숏컷, 히피, 장발 스타일이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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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에서 추축군의 이탈리아는 거의 민폐만 끼쳤다고하던데요 정말인가요?
이탈리아는 추축국으로 침략 전쟁에 일으켰으나 그리스, 북아프리카, 발칸 등에서 독일이 나서서 정래할 정도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독일군은 이탈리아를 뒤치닥꺼리를 하느라 전쟁 지연과 낭비가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산업, 교육, 군사조직 측면서 독일 보다 뒤쳐졌고, 낡은 전차, 장비, 부족한 석유, 전술면에서 약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동부 전선 지중해 전역에서 독일과 함께 어느정도 싸웠으며, 완전히 없어도 되었던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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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때 노비들은 정말로 양반들 마음대로 가능했나요??
조선시대 노비는 사적 소유, 상속, 증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비라도 주인맘대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결혼은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시대 규범상 노비는 노비끼리만 가능했스니다. 양천교혼이 원칙적으로 제한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양인과 노비 간의 혼인이 있는 경우가 있었으며, 그래서 정부에서는 노비종모법, 노비종부법을 제정하여 자녀의 신분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비는 양반, 관료의 집안에서 직접 노동하는 솔거노비였으며, 외거노비는 신공을 주인에게 제공해야 했습니다. 결혼, 노동, 삶 전반에서 노비는 주인공의 영향력이 크고, 극단적인 억압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주인 맘대로 노비를 완전히 무제한으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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